글쓴밤 제 3회 모임

주제 : '낙엽' & '비'

2018.12.03 월




 "엄마, 창 밖에서 비가 내려!"


 옆에 앉은 꼬마아이가 창문에 매달리며 제 엄마를 보챈다. 엄마, 엄마, 어서 봐바. 물이 떨어져. 노란 나뭇잎들도 떨어지고 있어. 그런 아이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엄마라 불린 여인은 창문 밖을 바라보다. 


 "이제 겨울이 오려나봐." 


 한참을 아이같은 얼굴로 바깥을 바라보던 아이 엄마는, 다시금 아이에게 몸을 돌렸다. 아이가 엄마의 팔을 콕, 콕, 찌르고 있었다. 


 "엄마, 나뭇잎들은 왜 멀어지는거야? 예뻐서 좀더 오래 있다가 갔으면 좋겠는데…"


 "나뭇잎들이 일찍 떠나버려서 아쉽니 아가?"


 "응, 엄청! 예쁜데 얼마 못있다가 가버리잖아. 봄에 폈던 꽃들도 그렇고, 왜 더 오래 보고 싶었던 것들은 일찍 가버리는거야?" 


 아이를 바라보며 여인은 잠시 희비를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부드럽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가, 더 오래 보고 싶었던 것들이 다른 것들 보다 더 일찍 가버리는 이유는 그 아름다움을 다른 이들에게도 보여주기 위해서래.

우리 아가 눈에 아름다워 보인다면, 다른 사람들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치만… 예쁘니까 내가 더 가지고 있고 싶은데…"


"자, 양보할 줄 아는 착한 아가여야지?"





 마음씨 고운 어머니와 사랑스러운 아가, 그 흔한 이야기다. 그렇게 그 아가는 화목하고 사랑받는 가정에서 잘 자라서 행복한 해피 엔딩을 맞이했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현실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피붙이라고는 자기 엄마 밖에 없는 아이와 아이 뿐인 어머니. 혈혈단신의 어머니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해왔다. 제 몸은 신경쓰지 않고 지내온 탓에, 아이가 성인이 될 무렵 쯔음에는 이미 어머니의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한계를 마주쳐버린 것인지 얼마전, 식당을 하다가 갑자기 쓰려져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어머니, 우리 어머니. 


 병원 한 구석의 침대 위에 고립 된지 몇번의 해가 뜨고, 몇번의 달이 뜨는 날에도, 엄마는 병원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 창 밖만을 쳐다봤다. 내가 올때면 고운 얼굴로 힘껏 웃어주지만, 나는 안다. 내가 없을 때면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만 바라본다는 것을. 


 "엄마, 나 이번에 휴가 내고 둘이 여행 다녀올까?"


 엄마의 옆에 걸터앉고 내뱉은 첫 마디였다. 나의 손에는 검사결과가 써 있는 종이가 들려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 여기는 무슨 순 돌팔이 뿐인가보다. 이게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이제 겨우 안정적인 생활 할 수 있게 됐는데, 드라마 처럼 어머니가 아프고 암 말기라니, 클리셰도 이런 클리셰가 없을 거다. 삼류 작가들이나 쓰는 소설 속에 나올법한 그런 드라마틱한 설정, 내 인생이 누군가의 글이었다면, 나는 그 인간을 찾아가서 있는 힘껏 쥐어 패고 올거다. 쓸꺼면 행복한 이야기를 쓰지 하필이면 이런 암울한 이야기냐고. 


 "아가, 저기 저 큰 나무 보여? 엄마는 저 나무의 낙엽들이 전부 떨어지면 하늘로 돌아갈꺼야."


 엄마의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제 속도 모르고 이런 소리만 하는 엄마가 미웠다. 


 "무슨 소리야, 그건 마지막 잎새고 엄마. 의사가, …의사가, …아니야."


 "괜찮아. 이 엄마가 너 하루 이틀보니, 의사가 안좋은 소리 하지?"


 "…"


 차마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엄마를 향해, 곧 죽는다고 말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억울했다. 마지막 잎새는 주인공이 회복 하기라도 하지, 여기는 수술도 안시켜준댄다. 가능성이 없다고. 준비 하라고 나를 시킨다. 엄마를 벼랑끝으로 몰아내는 것을. 


 "…아가, 어릴때, 수목원 놀러갔던 날 기억나?"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서울로 상경하고 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이 놀러간 곳인데. 그러나 무언가 목을 죄이는 기분이 들었다. 입을 열면 눈물이 쏟아져 나올것 같았다.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전부 다 기억해 엄마는.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네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엄마가 나의 손을 두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쥐었다. 


 "그때 아가가 그랬지, 예쁜 것들은 왜 더 일찍 가버리냐고. 속상해 할 것 하나 없어. 이것도 그런거야. 아가를 향한 엄마의 사랑이 너무 예뻐서, 다른 이들에게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거야."


 "…나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어. 내가 다 갖고 있고 싶어."


 결국 울음이 터져 나왔다. 참다 참다 터져버린 울음은 병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우렁찼다. 서러움도 같이 눈에서 흘러 나왔다. 꼬마아이때 처럼 엄마의 무릎에 엎드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옳지, 착하지 우리 아가. 따스한 손길이 등을 만지고 지나갔다. 


 " 엄마가 걱정되는건 우리 아가 혼자 냅두고 가버리는 거지. 그래도, 얼른 돌아올게. 그러니까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야해?"


 히끅 거리며 엄마를 쳐다봤다. 눈시울이 잔뜩 붉어져서 금붕어 입술처럼 눈을 떴다. 목소리도 안나와서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엄마, 나의 엄마, 나의 낙엽. 비가 오면 사라질 나의 낙엽. 비가 오면 다시 돌아올 나의 낙엽. 

디씨코믹스 패러디

제이슨 토드


IF 제이슨이 조커에게 죽임 당하지 않고, 평범하게 자라왔다면, 평범하게 학교다니며 자경단 활동하는 세계.

제이슨의 말투가 쵸큼 다정한것. 놀랍게도 그럼에도 레드후드가 된 세계.

나는 그저 대학 다니는 제이슨이 보고싶은것



전편은 이쪽







 


 제이슨 토드에게는 분노와 허망함, 공포 외 감정이란 무지의 공간같았다. 지금까지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도 그 외의 감정을 느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사랑같은 유치한 감정은. 조커에게 붙잡혔던 날, 목숨이 날아갔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극적으로, 흔한 드라마에 나올법한 결말처럼, 극적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브루스는 그날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의 목숨을 손에 쥐고 있던 것은 다름아닌 조켜였다. 그를 사지로 몰아 넣은것도 조커였다. 그를 몰아넣는데 일조 한것은 제이슨의 어머니였다. 함정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이슨은 그 함정속으로 제 발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울었다. 미안하다며, 저가 생각이 짧았다고 울부짖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진심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공포를 느꼈다. 어머니는 죽기 싫다며 살려달라 빌고 있었다. 그의 인생 통틀어, 어머니의 살려달라는 눈빛이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목이, 숨통이 옥죄여왔다. 결국 그를 놓아준건 조커의 변덕이었다. 배트맨의 절망보다는 로빈의 절망이 더 궁금해졌다고 했다.그 이후로 제이슨은 크게 변했다. 더욱더 사나워졌고, 자비는 그 날 이후로 모습을 감추었다. 팀의 말을 빌리자면,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었다고 했다. 알프레드의 오랜 노력끝에 그가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족들 뿐이었다. 타인에게는 그는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두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그녀를 마주했을때 느낀 간질거림음 너무나 낯설었다. 처음에는 몸에 이상이 생긴줄알았다. 처음으로 느끼는 무언가였으니까. 그때는 이것이 감정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무언가의 간질거림이 제 심장에서 비롯되고 있다는걸 깨달은건, 그녀와 두번째 마주쳤을때였다. 그 강의실 안에서 두번이고 세번이고, 그녀와 마주칠때만 심장이 더 빠르게 고동치는게 느껴졌다. 다른사람을 볼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맥박이, 그녀가 시야에 들어오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다. 제이슨은 그녀를 애정하고 있었다. 특별한 의미로.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이나 다른 것이었다. 몸은 저 스스로 제어가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그녀에게 끌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이슨의 의식은 조금 달랐다. 그는 스스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낮에는 평범한 대학생, 밤에는 고담시를 돌아다니는 레드후드. 그는 항상 죽음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보기에는, 평생을 살면서 그런 죽음과는 접점조차 없을 것 처럼 보였다. 레드후드에게는, 그녀는 너무나 큰 리스크였다. 갑작스러운 변화일것이 분명했다. 그는 과거에도, 누군가를 향한 그의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뻔했다. 모든것은 그가 '로빈' 이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의 특별한 감정이 그녀에게 무슨 일을 일으킬지 그는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팀도, 그가 로빈이었기에, 그렇기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다. 박쥐에게 유일하게 허락되는 것은 어둠 속 고독이었다. 

 옥상 난간에 걸터앉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고담은 조용했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데, 누구라도 정신을 팔수 있게 도와줬으면 했지만, 정말로 이럴때만 도시는 조용했다. 갑갑한 마음에 헬멧을 벗었다.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얼마 마주하지 못한 그가 그리는 그녀의 모습은, 반짝였다. 저 위에 제일 밝게 빛나는 별보다 더 강하게, 더 밝게 반짝이는 것 같았다.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보던 그 표정도, 할리퀸을 마주한 뒤 바닥을 짚고 울던 그 모습도, 전부다 빛이 나고 있었다. 그녀는 그림자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밝은 빛 속에 존재했다. 그런 그녀를 그대로 두고 싶었다. 그럼에도, 제이슨은 그녀를 그런 그녀를 밝은 빛에서 끌어내리고 싶었다. 끌어내려, 그의 품속으로 꽁꽁 숨기고 싶었다. 

"제이?"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은 나이트윙이었다. 벌써 그녀 생각에 정신이 흐트러진것 같았다. 딕이 뒤에서 나타난 것도 모르고.

"그 여자애에 대한거야?"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냐는 듯 쳐다보다, 이내 제이슨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딱히 그에게도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가 제일 먼저 눈치 챘을꺼라 생각했었다. 옆에 다가와 앉으며 도미노를 벗는다.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먼저 입을 연것은 딕이었다.

"자경단 활동을 하는 거랑, 누군가를 만난다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거라고 생각해. 나는, 물론, 리처드 그레이슨으로서, 여럿을 만나왔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것이야. 나이트윙으로서 만나온 사람들도 여럿있고. 중요한건, 네가 누구던 간에 그게 너를 옭아매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물론 위험해 질수도 있지, 그치만 지금은 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잖아? 우리같은 다 큰 건장한 성인이 누구도 안만나고 평생 살 것도 아니고 말이야. 고자가 아니고서는야. 적어도 난 그래. …구구절절 이야기 했지만 결론은, …나는 내 동생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뭐라는거야."

 퉁명스러운 대답일지 몰라도 그와 어울리지 않게 제이슨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들었다. 어쩌면 딕이 맞을지도 모른다. 모든건 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제이슨은 이 감정이 낯설었다. 그리고 그는 낯선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통제할수 없는 것은 썩 반기지 않았다. 이런면 만큼은 브루스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광적인 통제력을 혐오하면서도 그 또한 통제하기를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조금 혼란스러워도, 그 통제 불가능한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통제 또한 하나의 다른 핑계 일지도 모른다. 그저, 사랑하는 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어쩌면 겁쟁이 처럼 도망쳐온것 뿐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도 잃을뻔했고, 실제로 잃은 적도 있었고, 앞으로도 잃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럼에도, 제이슨은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다른데. 제이슨은 더이상 '로빈'이 아니었다. 더 이상 과거 속에 갇힌 나약한 배트맨의 조수가 아니었다. 그는 제이슨 토드이고, 레드후드인 것이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처음으로, 사랑을 해도 혼이 나지 않는 밤이었다.


디씨코믹스 패러디

제이슨 토드


IF 제이슨이 조커에게 죽임 당하지 않고, 평범하게 자라왔다면, 평범하게 학교다니며 자경단 활동하는 세계.

제이슨의 말투가 쵸큼 다정한것.


전편은 이쪽으로

겨울이 지나간 뒤에 봄이 온다는 것은 지극히 낙관적인 말이다. 그것도 그럴것이, 우리의 고담시에 사는 아가씨는, 여태 계속 겨울이었으니까 말이다. 조금 추운 겨울도 아니고 빙하기 수준의 겨울이었다. 사실 그녀가 이 도시로 이사를 온건 기껏해 봐야 2년전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물론 고담 밖에서도, 여엿한 성인으로써 여러 사람들은 만나 보았지만, 그녀는 그저, 영 운이 없다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자보는 눈이 정말로, 없다 못해 실명한 수준이었다. 고담에 와서 처음 만나본 남자는 알고보니 그녀가 파트타임일을 하던 카페 윗층 은행을 털려고 만나던 전문 강도범이었고, 분위기 좋은 바에서 만난 남자는 알고보니 마약 거래상이었다. 어떻게 들켰냐고 묻는다면 그 남자가 그녀에게 약을 권유하며 들이미는게 하얀 가루였던 것 이라더라. 그외에도 잠시 스쳐지나간 인연중에서도 정말 셀수없이 두번다시 만났다간 경찰서에 잡혀갈 사람들이 여럿 존재했다. 그녀 자신도 자꾸만 그런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걸 알기 때문에, 그녀의 연애사는, 계속 겨울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더더욱 그 입학식에서 제이슨을 처음 마주한날, 처음으로 심장이 제 박자에 맞지않게 두근거린날, 그녀는 귓가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축하한다기 보단, 일단 의심부터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떤 미친놈일까, 저번에는 자칫하다가 같이 경찰서에 끌려갈뻔했는데, 이번에는 그정도는 아니겠지. 그가 브루스 웨인의 둘째 아들이라는 사실을 들은 건 한참 이후이 이야기다.

학교 수업이 다 끝난 후에는 보통 무엇을 하냐면, 일주일에 절반은 고담시에서 제일로 유명한 디저트 카페에서 일을 한다. 페이도 생각보다 괜찮고, 빌런들도 맛있고 달콤한 케이크는 중요한건지, 유난히 범죄율이 낮기로 유명해서, 나름 좋은 일자리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도 딱 오늘까지만. 지금 그녀는 카운터 안에서 총을 자신에게 겨누고 있는 할리퀸의 부하와, 혼자 유유자적 진열대에 나와있는 케이크 하나를 꺼내서 테이블에 앉아 고상하게 먹는 할리퀸을 번갈아 쳐다봤다. 손님들이 그나마 없는 시간대여서 망정이지만, 같이 인질로 잡힌 젊은 커플 한쌍과 옷 한번 괴상하게 입는 미청년 한명뿐이었다. 애초에 사장님은 돈만 걷으러 오고 이 곳 직원은 그녀 혼자뿐이었다. 2년을 고담에서 살면서 빌런은 커녕 작은 갱조차 마주친적없는데, 일주일만에 펭귄에 이어서 할리퀸이라니, 뭔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를 안만나니, 뭐 그런거야? 그 악운이 어딘가 다른곳에서 터져버리거나. 속으로 짜증을 부리던 와중에 갑자기 할리퀸이 일어나서 카운터 안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잠, 잠깐, 엄마야, 제가 왜 고담으로 온다고 했었죠? 미쳤다고 고담으로 이사 왜 온다고 했었지? 너, 쳐다보는게 마음에 안들어. 라며 갑자기 옆에 그녀의 부하의 허리춤에서 권총하나를 집어들고 그녀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아무래도 제 목숨은 여기까지 인가 봅니다. 고담시 평균 사망 나이가 괜히 다른곳들보다 낮은게 괜히 그런게 아니였어. 눈을 질끈 감고 할리퀸이 방아쇠를 잡아당기기만을 기다리던 그 순간, 문 쪽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총소리였다, 어라, 근데 안아파. 빗나갔나? 설마 그 거리에서? 아니면 즉사해버린건가? 온갖 의문들로 머리를 가득채웠을때, 그녀는 살며시 눈을 떠봤다.

"이제는 하다 못해 디저트가게라니, 네 초록색 미친놈은 어디에 있어. 할리퀸."

말하는 빨간 뚜겅이 문앞에 서있었다. 아무래도 옆에 서있던 부하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걸 보면 그 총은 부하의 어깨를 맞춘것 같았다. 바닥에 피가 고이고 있었다. 젠장. 가게 바닥에 피라니, 닦으려면 꽤나 고생하겠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 무언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저 멀리서 빨간 뚜껑이 말을 건다. 

"지금 네 목숨 구하고 있는데 인상 좀 피지 그래?"

예. 총 겨눠지고 있는 제가 입 다물어야죠.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기에 그냥 입을 다물기로 결정했다. 작은 웃음소리가 손님들 쪽에서 새어나온것 같았지만. 자신을 겨눈 레드후드와 자신이 겨누고 있는 아가씨를 번갈아 보다가, 자기가 졌다는 듯 겨누던 총을 거두고, 양손을 올리는 시늉을 한다. 

"재미 없어졌어. 다음에 또 보자 스위티, 거기 아가씨도, 케이크가 일품이야 아주."

칭찬이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않는건 순전히 제가 꼬여서 그런건가요. 할리퀸이 건물을 벗어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멍하니 바닥을 쳐다보고있자, 빨간 헬멧을 쓴 남자가 다가온다.

"괜찮냐."

저가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사람 하나도 없는 외톨이는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헬멧 너머로 들려오는 살짝 깨진 그 목소리가, 어쩐지 안심이 된것 같았다. 고개를 들고 그 헬멧을 쳐다보다, 결국 눈물이 차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아, 히끅, 괜찮을, 윽, 리가, 없잖아. 울먹이며 겨우겨우 말을 내뱉었다. 어이가 없는건지 한숨을 푹 내 쉬고는 뭐라고 한마디 할 줄 알았던 그는 오히려 손을 내밀었다. 가죽장갑은 그대로 낀 채 였지만. 언뜻 화약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 방금 그 남자를 겨누었지. 누군가를 반죽음으로 내 민 손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인가 무섭지않았다. 내민 손을 잡으라고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손을 잡자 거의 이끌려 올려져 일으켜졌다. 엄청난 괴력이네 이사람. 그러나 일어서면 뭐해, 제대로 서있질 못하는 그녀를 답답한 듯이 쳐다보더니 양 팔 아래에 손을 집어넣는다. 

"어, 어딜 만지는거에요!"

뺴액 소리지른 보람도 무색하게, 그녀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책상위에 앉힌다. 머쓱해진 그녀는 한참을 손가락만 꼼지락 거리다가 말을 겨우겨우 꺼냈다. 

"빨간뚜껑씨는…"
"누가 빨간뚜껑이야. "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제 말을 끊어버린다. 아무래도 빨깐뚜겅이 아닌것 같았다. 조금 화가 난듯 해보였다. 장담컨대 고담에 와서 늘어난건 생존본능과 눈치밖에 없을것이다. 그 눈치를 실컷보며 그를 아래에서 올려다 보았다. 최대한 불쌍한 눈으로. 한참 눈을 마주하더니, 사실 헬멧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떄문에 눈을 맞추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지만, 대충 느낌상, 한숨을 또 크게 내쉰다. 빨간뚜껑씨 너 그거아니, 너 날 보고 벌써 한숨만 두번째인거. 내가 그렇게 답이 없는것 같지는 않은데. 

"…레드후드"
"예?"
"빨간 뚜껑이 아니라 레드후드라고. 기억해."
"저한테 왜 알려주시는거에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빌런이던 히어로던 두번은 보고 싶지 않거든요. 오래 건강하게 안전하게 살고 싶습니다, 레드후드씨.

"또 볼것같아서."
"이 근처에 누가 습격 예고장이라도 보냈나요? 그렇다면 제가 지금 당장 짐을 싸고ㅡ"
"아니, 그쪽한테 흥미가 생겼거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빨간뚜, 아니, 레드후드는 가게를 나섰다. 무슨 사내놈이 그런말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막 내뱉어! 라고 말하기엔 이미 그 손님들은 일찍이 피신한지 오래였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무슨 살인 예고야? 첫번째 메모, 고담에는 별 미친놈들이 다있는것 같다. 두번째 메모, 빨, 아니, 레드후드는 제멋대로 인것같다. 아무래도 내 이름도 모를텐데 또 보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분 나쁜 말투에 그 목소리라니. 이건 너무 불공평한 조합이잖아. 마지막 메모, 어머니, 아무래도 이 울리는 종소리, 제 휴대폰 벨소리 아닌거죠. 제발 휴대폰 벨소리가 맞다고 해주실래요. 벨소리가 아니라구요? 하하, 그러게, 핸드폰은 저기 망가진채로 바닥에 늘여져있네. 맙소사, 아무래도 이번에는 경찰서로 끝날 것 같지가 않을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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