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밤 제 3회 모임

주제 : '낙엽' & '비'

2018.12.03 월




 "엄마, 창 밖에서 비가 내려!"


 옆에 앉은 꼬마아이가 창문에 매달리며 제 엄마를 보챈다. 엄마, 엄마, 어서 봐바. 물이 떨어져. 노란 나뭇잎들도 떨어지고 있어. 그런 아이를 사랑스럽게 쓰다듬으며 엄마라 불린 여인은 창문 밖을 바라보다. 


 "이제 겨울이 오려나봐." 


 한참을 아이같은 얼굴로 바깥을 바라보던 아이 엄마는, 다시금 아이에게 몸을 돌렸다. 아이가 엄마의 팔을 콕, 콕, 찌르고 있었다. 


 "엄마, 나뭇잎들은 왜 멀어지는거야? 예뻐서 좀더 오래 있다가 갔으면 좋겠는데…"


 "나뭇잎들이 일찍 떠나버려서 아쉽니 아가?"


 "응, 엄청! 예쁜데 얼마 못있다가 가버리잖아. 봄에 폈던 꽃들도 그렇고, 왜 더 오래 보고 싶었던 것들은 일찍 가버리는거야?" 


 아이를 바라보며 여인은 잠시 희비를 읽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부드럽게,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가, 더 오래 보고 싶었던 것들이 다른 것들 보다 더 일찍 가버리는 이유는 그 아름다움을 다른 이들에게도 보여주기 위해서래.

우리 아가 눈에 아름다워 보인다면, 다른 사람들도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그치만… 예쁘니까 내가 더 가지고 있고 싶은데…"


"자, 양보할 줄 아는 착한 아가여야지?"





 마음씨 고운 어머니와 사랑스러운 아가, 그 흔한 이야기다. 그렇게 그 아가는 화목하고 사랑받는 가정에서 잘 자라서 행복한 해피 엔딩을 맞이했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마무리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현실의 이야기는 조금 다르다. 


 피붙이라고는 자기 엄마 밖에 없는 아이와 아이 뿐인 어머니. 혈혈단신의 어머니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해왔다. 제 몸은 신경쓰지 않고 지내온 탓에, 아이가 성인이 될 무렵 쯔음에는 이미 어머니의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 있었다. 한계를 마주쳐버린 것인지 얼마전, 식당을 하다가 갑자기 쓰려져 결국 병원 신세를 지게 된 어머니, 우리 어머니. 


 병원 한 구석의 침대 위에 고립 된지 몇번의 해가 뜨고, 몇번의 달이 뜨는 날에도, 엄마는 병원에 들어온 이후로 계속 창 밖만을 쳐다봤다. 내가 올때면 고운 얼굴로 힘껏 웃어주지만, 나는 안다. 내가 없을 때면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만 바라본다는 것을. 


 "엄마, 나 이번에 휴가 내고 둘이 여행 다녀올까?"


 엄마의 옆에 걸터앉고 내뱉은 첫 마디였다. 나의 손에는 검사결과가 써 있는 종이가 들려 있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는게 좋겠다는 의사의 말. 여기는 무슨 순 돌팔이 뿐인가보다. 이게 무슨 드라마도 아니고, 이제 겨우 안정적인 생활 할 수 있게 됐는데, 드라마 처럼 어머니가 아프고 암 말기라니, 클리셰도 이런 클리셰가 없을 거다. 삼류 작가들이나 쓰는 소설 속에 나올법한 그런 드라마틱한 설정, 내 인생이 누군가의 글이었다면, 나는 그 인간을 찾아가서 있는 힘껏 쥐어 패고 올거다. 쓸꺼면 행복한 이야기를 쓰지 하필이면 이런 암울한 이야기냐고. 


 "아가, 저기 저 큰 나무 보여? 엄마는 저 나무의 낙엽들이 전부 떨어지면 하늘로 돌아갈꺼야."


 엄마의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아는데도 불구하고, 제 속도 모르고 이런 소리만 하는 엄마가 미웠다. 


 "무슨 소리야, 그건 마지막 잎새고 엄마. 의사가, …의사가, …아니야."


 "괜찮아. 이 엄마가 너 하루 이틀보니, 의사가 안좋은 소리 하지?"


 "…"


 차마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엄마를 향해, 곧 죽는다고 말 할 수 없었다. 게다가 억울했다. 마지막 잎새는 주인공이 회복 하기라도 하지, 여기는 수술도 안시켜준댄다. 가능성이 없다고. 준비 하라고 나를 시킨다. 엄마를 벼랑끝으로 몰아내는 것을. 


 "…아가, 어릴때, 수목원 놀러갔던 날 기억나?"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 서울로 상경하고 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이 놀러간 곳인데. 그러나 무언가 목을 죄이는 기분이 들었다. 입을 열면 눈물이 쏟아져 나올것 같았다.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전부 다 기억해 엄마는. 네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네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엄마가 나의 손을 두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쥐었다. 


 "그때 아가가 그랬지, 예쁜 것들은 왜 더 일찍 가버리냐고. 속상해 할 것 하나 없어. 이것도 그런거야. 아가를 향한 엄마의 사랑이 너무 예뻐서, 다른 이들에게도 보여주기 위해서 그런거야."


 "…나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싫어. 내가 다 갖고 있고 싶어."


 결국 울음이 터져 나왔다. 참다 참다 터져버린 울음은 병실을 가득 채울 정도로 우렁찼다. 서러움도 같이 눈에서 흘러 나왔다. 꼬마아이때 처럼 엄마의 무릎에 엎드려 엉엉 울기 시작했다. 옳지, 착하지 우리 아가. 따스한 손길이 등을 만지고 지나갔다. 


 " 엄마가 걱정되는건 우리 아가 혼자 냅두고 가버리는 거지. 그래도, 얼른 돌아올게. 그러니까 건강하게 지내고 있어야해?"


 히끅 거리며 엄마를 쳐다봤다. 눈시울이 잔뜩 붉어져서 금붕어 입술처럼 눈을 떴다. 목소리도 안나와서 겨우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엄마, 나의 엄마, 나의 낙엽. 비가 오면 사라질 나의 낙엽. 비가 오면 다시 돌아올 나의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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