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씨코믹스 패러디

제이슨 토드


IF 제이슨이 조커에게 죽임 당하지 않고, 평범하게 자라왔다면, 평범하게 학교다니며 자경단 활동하는 세계.

제이슨의 말투가 쵸큼 다정한것. 놀랍게도 그럼에도 레드후드가 된 세계.

나는 그저 대학 다니는 제이슨이 보고싶은것



전편은 이쪽







 


 제이슨 토드에게는 분노와 허망함, 공포 외 감정이란 무지의 공간같았다. 지금까지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도 그 외의 감정을 느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사랑같은 유치한 감정은. 조커에게 붙잡혔던 날, 목숨이 날아갔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극적으로, 흔한 드라마에 나올법한 결말처럼, 극적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브루스는 그날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의 목숨을 손에 쥐고 있던 것은 다름아닌 조켜였다. 그를 사지로 몰아 넣은것도 조커였다. 그를 몰아넣는데 일조 한것은 제이슨의 어머니였다. 함정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이슨은 그 함정속으로 제 발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울었다. 미안하다며, 저가 생각이 짧았다고 울부짖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진심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공포를 느꼈다. 어머니는 죽기 싫다며 살려달라 빌고 있었다. 그의 인생 통틀어, 어머니의 살려달라는 눈빛이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목이, 숨통이 옥죄여왔다. 결국 그를 놓아준건 조커의 변덕이었다. 배트맨의 절망보다는 로빈의 절망이 더 궁금해졌다고 했다.그 이후로 제이슨은 크게 변했다. 더욱더 사나워졌고, 자비는 그 날 이후로 모습을 감추었다. 팀의 말을 빌리자면,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었다고 했다. 알프레드의 오랜 노력끝에 그가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족들 뿐이었다. 타인에게는 그는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두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그녀를 마주했을때 느낀 간질거림음 너무나 낯설었다. 처음에는 몸에 이상이 생긴줄알았다. 처음으로 느끼는 무언가였으니까. 그때는 이것이 감정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무언가의 간질거림이 제 심장에서 비롯되고 있다는걸 깨달은건, 그녀와 두번째 마주쳤을때였다. 그 강의실 안에서 두번이고 세번이고, 그녀와 마주칠때만 심장이 더 빠르게 고동치는게 느껴졌다. 다른사람을 볼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맥박이, 그녀가 시야에 들어오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다. 제이슨은 그녀를 애정하고 있었다. 특별한 의미로.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이나 다른 것이었다. 몸은 저 스스로 제어가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그녀에게 끌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이슨의 의식은 조금 달랐다. 그는 스스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낮에는 평범한 대학생, 밤에는 고담시를 돌아다니는 레드후드. 그는 항상 죽음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보기에는, 평생을 살면서 그런 죽음과는 접점조차 없을 것 처럼 보였다. 레드후드에게는, 그녀는 너무나 큰 리스크였다. 갑작스러운 변화일것이 분명했다. 그는 과거에도, 누군가를 향한 그의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뻔했다. 모든것은 그가 '로빈' 이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의 특별한 감정이 그녀에게 무슨 일을 일으킬지 그는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팀도, 그가 로빈이었기에, 그렇기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다. 박쥐에게 유일하게 허락되는 것은 어둠 속 고독이었다. 

 옥상 난간에 걸터앉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고담은 조용했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데, 누구라도 정신을 팔수 있게 도와줬으면 했지만, 정말로 이럴때만 도시는 조용했다. 갑갑한 마음에 헬멧을 벗었다.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얼마 마주하지 못한 그가 그리는 그녀의 모습은, 반짝였다. 저 위에 제일 밝게 빛나는 별보다 더 강하게, 더 밝게 반짝이는 것 같았다.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보던 그 표정도, 할리퀸을 마주한 뒤 바닥을 짚고 울던 그 모습도, 전부다 빛이 나고 있었다. 그녀는 그림자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밝은 빛 속에 존재했다. 그런 그녀를 그대로 두고 싶었다. 그럼에도, 제이슨은 그녀를 그런 그녀를 밝은 빛에서 끌어내리고 싶었다. 끌어내려, 그의 품속으로 꽁꽁 숨기고 싶었다. 

"제이?"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은 나이트윙이었다. 벌써 그녀 생각에 정신이 흐트러진것 같았다. 딕이 뒤에서 나타난 것도 모르고.

"그 여자애에 대한거야?"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냐는 듯 쳐다보다, 이내 제이슨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딱히 그에게도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가 제일 먼저 눈치 챘을꺼라 생각했었다. 옆에 다가와 앉으며 도미노를 벗는다.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먼저 입을 연것은 딕이었다.

"자경단 활동을 하는 거랑, 누군가를 만난다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거라고 생각해. 나는, 물론, 리처드 그레이슨으로서, 여럿을 만나왔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것이야. 나이트윙으로서 만나온 사람들도 여럿있고. 중요한건, 네가 누구던 간에 그게 너를 옭아매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물론 위험해 질수도 있지, 그치만 지금은 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잖아? 우리같은 다 큰 건장한 성인이 누구도 안만나고 평생 살 것도 아니고 말이야. 고자가 아니고서는야. 적어도 난 그래. …구구절절 이야기 했지만 결론은, …나는 내 동생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뭐라는거야."

 퉁명스러운 대답일지 몰라도 그와 어울리지 않게 제이슨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들었다. 어쩌면 딕이 맞을지도 모른다. 모든건 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제이슨은 이 감정이 낯설었다. 그리고 그는 낯선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통제할수 없는 것은 썩 반기지 않았다. 이런면 만큼은 브루스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광적인 통제력을 혐오하면서도 그 또한 통제하기를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조금 혼란스러워도, 그 통제 불가능한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통제 또한 하나의 다른 핑계 일지도 모른다. 그저, 사랑하는 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어쩌면 겁쟁이 처럼 도망쳐온것 뿐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도 잃을뻔했고, 실제로 잃은 적도 있었고, 앞으로도 잃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럼에도, 제이슨은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다른데. 제이슨은 더이상 '로빈'이 아니었다. 더 이상 과거 속에 갇힌 나약한 배트맨의 조수가 아니었다. 그는 제이슨 토드이고, 레드후드인 것이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처음으로, 사랑을 해도 혼이 나지 않는 밤이었다.


디씨코믹스 패러디

제이슨 토드


IF 제이슨이 조커에게 죽임 당하지 않고, 평범하게 자라왔다면, 평범하게 학교다니며 자경단 활동하는 세계.

제이슨의 말투가 쵸큼 다정한것.


전편은 이쪽으로

겨울이 지나간 뒤에 봄이 온다는 것은 지극히 낙관적인 말이다. 그것도 그럴것이, 우리의 고담시에 사는 아가씨는, 여태 계속 겨울이었으니까 말이다. 조금 추운 겨울도 아니고 빙하기 수준의 겨울이었다. 사실 그녀가 이 도시로 이사를 온건 기껏해 봐야 2년전이다. 그 짧은 기간 동안, 물론 고담 밖에서도, 여엿한 성인으로써 여러 사람들은 만나 보았지만, 그녀는 그저, 영 운이 없다고 할 수준이 아니었다. 그녀는 남자보는 눈이 정말로, 없다 못해 실명한 수준이었다. 고담에 와서 처음 만나본 남자는 알고보니 그녀가 파트타임일을 하던 카페 윗층 은행을 털려고 만나던 전문 강도범이었고, 분위기 좋은 바에서 만난 남자는 알고보니 마약 거래상이었다. 어떻게 들켰냐고 묻는다면 그 남자가 그녀에게 약을 권유하며 들이미는게 하얀 가루였던 것 이라더라. 그외에도 잠시 스쳐지나간 인연중에서도 정말 셀수없이 두번다시 만났다간 경찰서에 잡혀갈 사람들이 여럿 존재했다. 그녀 자신도 자꾸만 그런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걸 알기 때문에, 그녀의 연애사는, 계속 겨울이었다. 

그렇게 때문에 더더욱 그 입학식에서 제이슨을 처음 마주한날, 처음으로 심장이 제 박자에 맞지않게 두근거린날, 그녀는 귓가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축하한다기 보단, 일단 의심부터 하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어떤 미친놈일까, 저번에는 자칫하다가 같이 경찰서에 끌려갈뻔했는데, 이번에는 그정도는 아니겠지. 그가 브루스 웨인의 둘째 아들이라는 사실을 들은 건 한참 이후이 이야기다.

학교 수업이 다 끝난 후에는 보통 무엇을 하냐면, 일주일에 절반은 고담시에서 제일로 유명한 디저트 카페에서 일을 한다. 페이도 생각보다 괜찮고, 빌런들도 맛있고 달콤한 케이크는 중요한건지, 유난히 범죄율이 낮기로 유명해서, 나름 좋은 일자리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도 딱 오늘까지만. 지금 그녀는 카운터 안에서 총을 자신에게 겨누고 있는 할리퀸의 부하와, 혼자 유유자적 진열대에 나와있는 케이크 하나를 꺼내서 테이블에 앉아 고상하게 먹는 할리퀸을 번갈아 쳐다봤다. 손님들이 그나마 없는 시간대여서 망정이지만, 같이 인질로 잡힌 젊은 커플 한쌍과 옷 한번 괴상하게 입는 미청년 한명뿐이었다. 애초에 사장님은 돈만 걷으러 오고 이 곳 직원은 그녀 혼자뿐이었다. 2년을 고담에서 살면서 빌런은 커녕 작은 갱조차 마주친적없는데, 일주일만에 펭귄에 이어서 할리퀸이라니, 뭔가 단단히 잘못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를 안만나니, 뭐 그런거야? 그 악운이 어딘가 다른곳에서 터져버리거나. 속으로 짜증을 부리던 와중에 갑자기 할리퀸이 일어나서 카운터 안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잠, 잠깐, 엄마야, 제가 왜 고담으로 온다고 했었죠? 미쳤다고 고담으로 이사 왜 온다고 했었지? 너, 쳐다보는게 마음에 안들어. 라며 갑자기 옆에 그녀의 부하의 허리춤에서 권총하나를 집어들고 그녀의 머리를 향해 겨누었다. 아무래도 제 목숨은 여기까지 인가 봅니다. 고담시 평균 사망 나이가 괜히 다른곳들보다 낮은게 괜히 그런게 아니였어. 눈을 질끈 감고 할리퀸이 방아쇠를 잡아당기기만을 기다리던 그 순간, 문 쪽에서 총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총소리였다, 어라, 근데 안아파. 빗나갔나? 설마 그 거리에서? 아니면 즉사해버린건가? 온갖 의문들로 머리를 가득채웠을때, 그녀는 살며시 눈을 떠봤다.

"이제는 하다 못해 디저트가게라니, 네 초록색 미친놈은 어디에 있어. 할리퀸."

말하는 빨간 뚜겅이 문앞에 서있었다. 아무래도 옆에 서있던 부하가 바닥에 쓰러져 있는걸 보면 그 총은 부하의 어깨를 맞춘것 같았다. 바닥에 피가 고이고 있었다. 젠장. 가게 바닥에 피라니, 닦으려면 꽤나 고생하겠네.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 무언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저 멀리서 빨간 뚜껑이 말을 건다. 

"지금 네 목숨 구하고 있는데 인상 좀 피지 그래?"

예. 총 겨눠지고 있는 제가 입 다물어야죠.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알기에 그냥 입을 다물기로 결정했다. 작은 웃음소리가 손님들 쪽에서 새어나온것 같았지만. 자신을 겨눈 레드후드와 자신이 겨누고 있는 아가씨를 번갈아 보다가, 자기가 졌다는 듯 겨누던 총을 거두고, 양손을 올리는 시늉을 한다. 

"재미 없어졌어. 다음에 또 보자 스위티, 거기 아가씨도, 케이크가 일품이야 아주."

칭찬이 칭찬으로 받아들여지지않는건 순전히 제가 꼬여서 그런건가요. 할리퀸이 건물을 벗어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멍하니 바닥을 쳐다보고있자, 빨간 헬멧을 쓴 남자가 다가온다.

"괜찮냐."

저가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사람 하나도 없는 외톨이는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헬멧 너머로 들려오는 살짝 깨진 그 목소리가, 어쩐지 안심이 된것 같았다. 고개를 들고 그 헬멧을 쳐다보다, 결국 눈물이 차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었다. 아, 히끅, 괜찮을, 윽, 리가, 없잖아. 울먹이며 겨우겨우 말을 내뱉었다. 어이가 없는건지 한숨을 푹 내 쉬고는 뭐라고 한마디 할 줄 알았던 그는 오히려 손을 내밀었다. 가죽장갑은 그대로 낀 채 였지만. 언뜻 화약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아, 방금 그 남자를 겨누었지. 누군가를 반죽음으로 내 민 손임을 아는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인가 무섭지않았다. 내민 손을 잡으라고 본능이 말하고 있었다. 손을 잡자 거의 이끌려 올려져 일으켜졌다. 엄청난 괴력이네 이사람. 그러나 일어서면 뭐해, 제대로 서있질 못하는 그녀를 답답한 듯이 쳐다보더니 양 팔 아래에 손을 집어넣는다. 

"어, 어딜 만지는거에요!"

뺴액 소리지른 보람도 무색하게, 그녀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책상위에 앉힌다. 머쓱해진 그녀는 한참을 손가락만 꼼지락 거리다가 말을 겨우겨우 꺼냈다. 

"빨간뚜껑씨는…"
"누가 빨간뚜껑이야. "

말을 마치기도 전에 제 말을 끊어버린다. 아무래도 빨깐뚜겅이 아닌것 같았다. 조금 화가 난듯 해보였다. 장담컨대 고담에 와서 늘어난건 생존본능과 눈치밖에 없을것이다. 그 눈치를 실컷보며 그를 아래에서 올려다 보았다. 최대한 불쌍한 눈으로. 한참 눈을 마주하더니, 사실 헬멧 너머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 떄문에 눈을 맞추고 있는건지도 모르겠지만, 대충 느낌상, 한숨을 또 크게 내쉰다. 빨간뚜껑씨 너 그거아니, 너 날 보고 벌써 한숨만 두번째인거. 내가 그렇게 답이 없는것 같지는 않은데. 

"…레드후드"
"예?"
"빨간 뚜껑이 아니라 레드후드라고. 기억해."
"저한테 왜 알려주시는거에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빌런이던 히어로던 두번은 보고 싶지 않거든요. 오래 건강하게 안전하게 살고 싶습니다, 레드후드씨.

"또 볼것같아서."
"이 근처에 누가 습격 예고장이라도 보냈나요? 그렇다면 제가 지금 당장 짐을 싸고ㅡ"
"아니, 그쪽한테 흥미가 생겼거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빨간뚜, 아니, 레드후드는 가게를 나섰다. 무슨 사내놈이 그런말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막 내뱉어! 라고 말하기엔 이미 그 손님들은 일찍이 피신한지 오래였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무슨 살인 예고야? 첫번째 메모, 고담에는 별 미친놈들이 다있는것 같다. 두번째 메모, 빨, 아니, 레드후드는 제멋대로 인것같다. 아무래도 내 이름도 모를텐데 또 보다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기분 나쁜 말투에 그 목소리라니. 이건 너무 불공평한 조합이잖아. 마지막 메모, 어머니, 아무래도 이 울리는 종소리, 제 휴대폰 벨소리 아닌거죠. 제발 휴대폰 벨소리가 맞다고 해주실래요. 벨소리가 아니라구요? 하하, 그러게, 핸드폰은 저기 망가진채로 바닥에 늘여져있네. 맙소사, 아무래도 이번에는 경찰서로 끝날 것 같지가 않을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디씨코믹스 패러디

제이슨 토드


IF 제이슨이 조커에게 죽임 당하지 않고, 평범하게 자라왔다면, 평범하게 학교다니며 자경단 활동하는 세계.

제이슨의 말투가 쵸큼 다정한것.



위 글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내가 아는 사람 얘기 하나 해줄게. 일단 들어봐. 아는 녀석이 가기 싫다는 입학식 아버지한테 등 떠밀려 참석한 곳에서 난데 없이 펭귄이 난입하질 않나, 도저히 이 도시는 조용히 다닐수가 있어야지. 아마 죽은 목숨이었을꺼야, 그때 등장한 레드후드가 아니였다면. 그 친구가 레드후드여서 망정이지, 레드로빈도, 나이트윙도 없는 곳에서 유일하게 싸울수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그 친구 옆에 알짱거리는 도토리만한 여자애 하나가 있었는데,다른 사람 다 도망갔는데, 혼자 움직히지도 못하고 덜덜 떨고 있더래. 그래서 원래 그런 성격 아닌데도, 그냥 손이 갔나봐. 정신차려 보니 이미 펭귄의 어깨에 총알 하나쯤은 박살냈어야 하는데 말야, 그 작은 계집애를, 딕은 이렇게 부르면 화내지만, 데리고 안전한 곳까지 던져두고 오느라 다시 돌아가보니 펭귄은 이미 사라지고 흔적조차 안남아 있었대. 그래서 허탕도 쳤겠다, 그냥 손이 나간것 처럼 발도 제 멋대로 굴었나봐, 아까 그 계집애를 찾으러 다시 갔을때 이미 사라지고 없었대. 이름도 못 물어봤는데 말야. 아는거라고는 작고 허리까지 오는 검은 머리라는것 정도? 원래 이렇게 누구 구할때마다 이름을 물어보는 성격이냐고? 아냐, 딕이나 그런 성격이지, 나는, 아니, 레드후드는, 딱히 그런것도 관심없어해. 누굴 구하는것에서 보람을 느끼는것도 아니고. 그냥,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대. 몰라, 엄청난 빌런의 숨겨둔 첩이라고 느꼈나보지. 이름이라도 물어봤어야 했는데,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대. 그래봤자 뭐해, 이미 사라졌는데. 그렇게 놓친줄 알았는데, 한번은 우연이여도 두번은 운명이라는 말이 있잖아? 밤새 자경단 활동으로 피곤해서 잠이라도 자러 강의실 가은 길이었거든. 앞에 걸어가는 작은 계집애 하나 있더라. 뒷통수를 빤히 쳐다보는데, 어,  그녀석이더라. 그때 그 입학식때 그 녀석. 그 이후엔 원래 목적지도 잊어버리고  그 게집애만 따라간것 같아. 결국에는 내가 원래 가려고 하던 강의실에 도착했지만. 그 녀석, 같은 수업이더라? 이렇게 계속 마주치는 것도 마냥 우연이 아닌것 같고, 흥미가 생겼어. 그래서 나름 관찰해볼려고 그 수업도 매번 나가는데 팀녀셕이 나보고 웬일로 성실하게 학교 다니냐고 묻더라. 뭐라고 했냐고? 글쎄, 그냥 다람쥐가 들어가길래 따라 들어갔다고 했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라. 교육이 덜 된거지. 그래도 그때 이상한게,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더라. 

  여튼, 어디까지 했더라? 어, 따라 들어갔대. 왜 자꾸 나라고 하냐고? 아냐, 그건 너가 잘못들은 거야. 그냥 일단 계속 들어봐. 따라 들어갔는데, 자기가 나름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인데 언제 눈치채나 기다려봤대. 결국엔 끝까지 아는척은 커녕, 눈인사도 못받았지만. 답답해 뒤질거 같더라. 무슨 생각인지도 모르겠었어. 그냥 아무생각없이 그 녀석 옆에 앉아버린것 같아. 뭐라고 말 걸어볼 빌미라도 찾을려고. 결국에 한다는 소리가, 샤프좀 빌려줘라니, 데미안이 들으면 평생 놀렸을걸. 젠장. 그 레드후드가, 샤프좀 빌려줘가 뭐야. 고담의 온 빌런들이 놀려먹을 걸. 근데 그 소리에 그 녀석, 내 얼굴 드디어 쳐다보더라. 조금 놀란 눈치더데, 눈이 동그래져서. 계집애 눈은 새삼 크더라. 피부는 또 그렇게 하얗고. 그때 다쳤던건 다 나았을려나. 안그래도 이렇게 흰 피분데, 얼굴에 피가 났었던것 같은데. 입술은 또 붉은게, 꼭 장미 같더라. 그때 솔직히 말해서 잠시 생각하는걸 멈췄다. 레드후드가, 입술이 장미같다니, 무슨 딕이나 할것같은 대사를 속으로 읊고 있어. 근데 그 순간 만큼은 눈을 뗄수가 없더라. 머릿속으로 생각이 폭발하는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대답하지 않는 그 계집애가 답답하기는 커녕 귀여웠나봐, 헛웃음이 나오더라. 웃는거 참느라 엄청 혼났다고. 다시 말하지만 나는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커녕 진정한 사랑따위 믿지도 않는 사람인데, 왜, 그 영화에 흔히 나오는 True Love' Kiss. ​그런게 뭔지 새삼 알것같더라. 그냥, 반했다는건 아니고, 새삼 알겠다는거니까 그렇게 이상하게 웃으면서 쳐다보지는 마. 혼자 저 우주 끝을 뚫을 기세로 생각을 하고 있길래 잡아 줘야 할 것 같아서 정신차리게 해줬지. 허둥대면서 샤프를 내미는 계집애는, 그냥 마냥 귀여웠대. 물론 학교도 다니고 있고, 브루스 밑에서 부족한것 하나 없이 자라왔지만, 남정네만 여섯인 집에서 귀여움이라곤 눈꼽만큼도 찾을 수 없는게 분명하잖아? 그 귀엽다는게 너무 새로웠대. 신기하고, 새롭고, 그냥 또 그런 새로움을 보고 싶었대. 그래서 계속 관찰 하기로 결정한거지. 그래서 이 이야기를 왜 다짜고짜 들려줬냐고? 딕이, 젠장, 기분 좋아 보인대서 뭔일있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흥미로운 관찰대상을 찾았다고 했지. 원래는 여기까지만 얘기 할 셈 이었는데 딕이 하도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대충 얘기 해줬지. 근데 하는말이 나보고 인정하래, 넌 지금 사랑에 빠진거라고. 웃기지도 않아. 그 레드후드가? 사랑? 여긴 디즈니속 이야기가 아니잖아. 꿈과 희망의 나라가 아니라 밤이면 밤마다 마피아들과 미친 정신병자들이 총질해대는 도시인데, 사아랑? 그래서 한참 옥식각신하다가, 네가 보여서 물어보러 왔어. 네가 보기엔 어떤것 같아? 그냥 관찰일기 같은 느낌이지? 그냥 못보던 새로운 무언가가 신기해서, 뭐, 그런것 같지?


* * *


"제이슨은 어디갔어? 오늘 나랑 패트롤 담당인데 말야."

"무슨 이야기 한참 하더니 미친놈처럼 자리 박차고 뛰쳐 나가던데?"

"무슨 이야기를 했길래 그래?"

"글쎄, 그냥 얼굴이 터질듯이 붉어보이더라. 감기라도 걸렸나보지."

 데미안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상황파악을 대충한 딕은 마냥 웃고있었다. 드디어 동생에게도 봄이 오는구나. 제이슨 없으면 자기가 같이 갈까라는 데미안의 외침을 뒤로 하고 딕은 얼굴빨개진 동생을 상상하며 계단을 밟으며 내려갔다. 


디씨코믹스 패러디 

제이슨 토드


IF 제이슨이 조커에게 죽임 당하지 않고 배트맨이 제때 구해주러 왔다면,

그 이후에 자경단 활동을 하면서 평범하게 자랐다면, 안티히어로가 되지 않은 세계



그것은 한순간이었다. 저 스스로가 출간해 낸 책을 홍보하려고 의미없는 글을 강단 위에 서서 읽고 있는 교수는 이 넓은 강의실에서 유일한 소음이었다. 광활한 공간에 비해 수강생들도 압도적으로 적었다. 거의 학생들 사이 두세자리씩은 띄어 앉아도 될 정도였다. 그럴 정도 인것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모두 가 그렇게 앉아있었다. 필수도 아닌 교양수업에 학생들은 강의에 의미를 찾지 못하고 각자의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보내고 있었다. 저 늙은이의 목소리를 자장가 삼아 고개를 꾸벅거리며 잠든 이들이 있는가 반면, 무언가 , 수업과는 전혀 관계 없는, 열심히 적어 내려가는 이들도 있었다. 티가 나지 않게 몰래 휴대폰을 하는 이들도 있었고, 대놓고 노트북을 꺼내 제 할일을 하던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 사전에 약속이라도 한듯 소리 하나만큼은 새어 나가지 않았다. 마치 학교 도서관에 제일 일찍 출근 했을때와 같은 고요함이었다. 그 정적 속에서 한순간이었다 네가 내 옆에 다가와 앉은것은. 그 많고 많은 자리들 중에서 내 옆에 온 것은.


너를 모른다고 하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일것이다. 이 도시,  더 자세하게는 이 학교, 아니, 적어도 이 공간 안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학교뿐만이 아닌, 이 도시 그 자체의 설립자, 웨인가의 사랑받는 둘째아들. 매스컴은 주로 셋째 아들 티모시를 더 다루지만, 이 학교에서는 이 남자가 제일가는 수퍼스타다. 제이슨 웨인. 유명한 것 치고는 생각보다 평범하게 다니는것 같았다. 저 스스로도 이번 학기가 되기 전에는 지나가는 풍문으로 듣는게 다였지만, 하필이면 이 교양 수업이 겹치는 바람에. 


그의 큰 배경과 여러가지 생각들이 서로의 꼬리를 물고 늘어지고 있을때, 너는 말을 걸어왔다. 적을 걸 두고 왔다고, 필기구 하나만 빌려다라며 손을 내밀며 부탁하는 네 모습을 앞에 두고, 크고 투박한 네 손바닥을 들여다보았다. 굳은 살 투성이었다. 곱게만 자라왔을것 같은 도련님의 손바닥이 굳은 살 투성이라니, 뭔가 묘하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수업말고는 딱히 얼굴을 비추지않는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 학교를 입학한 그 날부터 계속 네 얘기만 들려왔다.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네 얘기만 들려온게 아니라, 네 얘기만 물어왔다. 그에게는 지금이 처음 보는것이겠지만, 나는 이미 그를 입학식 첫날 마주했다. 고담의 스케일은 예전부터 익히 알아왔지만, 직접 경험해보게 된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입학식 도중 난입하여 난동부린 펭귄과, 하필이면 맨 앞자리에 앉아 있다가 봉변을 당할뻔 한 저를, 모두가 패닉한채로 도망칠때 저를 구해준건 그였다. 그때부터 자꾸만 시선이 그의 발자락 끝에 머물렀다. 그의 이름만이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왔다. 그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교양 수업 첫날, 출석을 부르는 교수님의 부름에 대답하는 그의 낮은 목소리를 듣고, 그 이름을 듣고, 그 날이었다. 그날, 그 한순간이었다. Here. 그 목소리에 나는 사로잡혔다. 그 순간만큼은 다른것 무엇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너만이, 너만이 내 시야를 가득채웠다. 그 낮은 목소리로 내는 너의 웃음소리가 궁금해졌다. 네가 웃으면 어떤 느낌일까, 사소한것 하나하나가 나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아무것도 없어?"


훅 들어온 그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어, 여기. 별모양이 이리저리 찍혀있는 샤프를 하나 건네주었다. 그의 손가락 끝은 뜨거웠다. 교수에게 들키지않게 살짝 미소만 보인뒤 그는 다시 무언가 쓰는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유난히 더운것같았다. 강의실 에어컨이 고장났나 싶었다. 옆을 쳐다보니 가벼운 겉옷을 걸치고 있는 제이슨은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 강의 실 안에 있던 그 누구도 더운 내색조차 하지 않았다. 나만 더운건가? 손바닥을 뺨에 가져다 대자, 그제서야 깨달았다. 뜨거운건 그의 손가락이 아니라 제 것이었다. 심장이 유난히 빨리 뛰는 것 같았다. 뜨겁다 못해 온몸이 폭발할것같았다. 아마 누군가 저를 본다면 빨간 홍당무라고 착각할것이다, 분명. 이러다간 얼마 안가 모든게 다 들통날것 같았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지독하게도 아픈 새벽이었다.


아직은 달궈지다 만 차가운 공기가 뺨을 감싸왔다. 쇼토, 나의 쇼토. 네 이름을 몇번이고 반복해서 불러봐도, 네가 정신계 개성이 아닌 이상 절대 들을 수 있을리가. 엑모맨에 나오는 내가 제일로 좋아한다고 했던, 그 교수 역할의 캐릭터 처럼, 네가 내 머릿속을 멋대로 휘젔고 다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말하지 않아도, 너는 모든걸 알텐데. 네 얼굴을 마음놓고, 네 옆에서 온전히 나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쇼토, 나의 쇼토, 나의 사랑, 나의 도피처. 




너를 완전히 떠나기전, 마지막으로, 딱 마지막으로 네 얼굴이 보고싶어, 서성이다가 결국 네 집 앞까지 걸어왔어. 그나마 다행인걸까,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네 방은 아직까지 환한 빛이, 창문 틈 사이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쇼토, 작게 네 이름을 부르자 이내 창문이 열리고 토도로키가 얼굴을 내밀었다. 반쯤 의아하다는 듯이 인상을 살짝 찌뿌리고선 어쩐일이냐고 묻는 그의 목소리엔 걱정이 서려있었다. 


한참을 그 창문 밑에 서서 말없이 고개만을 숙인채로 있었다. 목끝까지 차오르는 말을 어찌 내뱉을 수 있을까. 쇼토, 사실은 나, 나 쇼토를 계속 좋아해 왔어. 근데 있잖아, 해가 밝아오면, 난 쇼토를 죽여야만해. 웃기지도 않지? 이 입술로,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내 마음 하나 온전히 표현하지도 못했는데, 이 입으로 증오를 담고, 너를 미워해야만해. 어떻게? 쇼토는 똑똑하잖아, 뭐든지 다 알잖아… 그니까 답을 알려줘. 


"쇼토."


"응, 카요. 왜 그래."


"쇼쨩… "


"왜 그렇게 주늑 들어있어. 무슨일 있었어? 또 누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아냐 쇼쨩, 아냐, 사실은 맞아. 아빠가, 엄마가, 온 가족이 납치 됐어. 도와줘. 도와줘 쇼쨩. 히어로잖아, 나 같은 잔챙이랑은 다른, 프로잖아. … 그 아저씨가, 너를 데려오래. 그래야 살려준데. 나 어떻게 해야해? 쇼쨩, 응? 애원하고, 다 털어 놓고, 네 품안에서 또 다시 어린애처럼 엉엉 울고 싶었다. 그치만, 나는 결국 이기적이고 나약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너에게 끝까지 거짓말 하는 수 밖에. 너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줄 지언정, 차라리 내가 원망의 대상이 될게. 그러니, 쇼토, 딱 한번만, 마지막으로.


"…쇼토"


"응. 왜."


"… 내일 같이 케이크 먹으러 가자. 쇼쨩이 좋아하는걸로."



네 옆에서 이렇게 웃을 수 있게 해줘. 어차피 밤이 지나면 모든게 물거품이 되버릴 테니.  

[하이큐/ 쿠로오 테츠로] 경찰서는 아니야, 꼬마 신부님.


드림성 소설.


W.카요 



이 상황을 대체 어떻게 헤쳐 나가야 잘 해결했다고 소문이 날까. 쿠로오 테츠로, 36, 도쿄 나름의 대기업에서 일하는 평범한 회사인, 전직 배구선수, 지금 인생 최대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저보다 대략 스무살은 어린 소녀한명이 다짜고짜 집으로 찾아와 인사하며 건넨말이, 자기가 내 아내랍니다. 


"쿠로오 아저씨?"


 아니야. 그렇게 귀엽게 쳐다보지마, 원래 어린애가 취향이긴 했어도, 망상과 현실을 구분 할 줄 아는 놈이었어, 나는. 애초에 미성년자를 건드릴 생각은 추호에도 없다고! 아, 켄마가 이 일을 알면 얼마나 쓰레기같은 눈으로 날 바라볼까. 그래, 일단 애니까, 잘 타일러서 돌려 보내자고, 그저 가출한 아이일 뿐일꺼야. 아마.


 "…그래서, 정확히 몇살이라고? "


"올해 19살이에요!"


 그래, 스무살차이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열일곱살… 퍽이나 다행이겠다!


 "이봐, 주소를 착각한 거 같은데, 난 결혼한적 없어. 너를 지금 처음 보기도 하고. "


 "앗, 그건 저도 입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얼굴이었는데, 실물이 훨씬 잘생긴것 같아요."


 소녀는 혼자서도 쫑알쫑알 잘만 이야기했다. 그래서 이름이 뭐라고? 카요에요, 이제 결혼하게 되었으니 쿠로오 카요라고 불리면 되겠어요! 누구마음대로, 난 결혼한적 없다니까! 


"엑, 그, 그치만"


 울먹거리던 소녀가 내게 내민건 서류봉투와 긴 편지였다. 봉투에는 혼인신고가 되어있는 혼인신고서와 그 외 필수적인 공적인 서류들 뿐이었다. 편지로 시선을 돌리자, 익숙한 필체가 눈에 들어왔다. 근 몇년간 껄끄러워 연락을 하지 않던 제 아버지의 필체였다. 망할 영감탱이. 그리고 서류를 다시 집어넣으려던 순간, 봉투 밑바닥에 남아있던 사진 한장을 발견했다. 사진을 꺼내어 보자 쿠로오의 표정은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사진속에는 어린 시절 저의 모습과 그 옆에는 앞에 앉아있는 소녀와 매우 닮으면서도, 다른 여자 아이가 함께 밝게 웃으며 자신과 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아, 이제서야 조금씩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사진 속 소녀는, 제 첫사랑이자, 그리고


"아, 이사진 엄청 오래됬나보네요. 어, 엄마다! 어머니는 어렸을때도 아름다우셨네요."


 자신이 제 아내라고 주장 하는 소녀의 어머니 인 셈이다. 


 이 아이의 어머니, 사진속의 소녀는, 이름이 뭐였더라, 아, 그래, 시타, 시타였던 거 같아. 시타는, 어렸을 적부터 같은 동네에 살던 친구여서, 켄마랑 셋이서 자주 놀았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까진 같이 다녔는데 고등학교를 가면서, 시타가 여고로 들어가는 바람에 헤어지고, 그 후로 갑자기 어른이 된 시타와, 아직은 철없는 수줍은 남학생의 이질감을 견뎌내지 못하고, 조금씩 서먹해져갔던게 기억난다. 고등학교 1학년이 거의 끝나 갈때 쯔음, 갑자기 이사가는 바람에 연락도 끊기고, 흔한 기억속에서만 남아있는 그런 이야기였다. 이상한 소문을 듣긴 했어도, 그게 진짜 일꺼라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니까 네가 시타의"


"어머니가 17살때 절 낳으시고, 몇 해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누누이 말씀 하셨어요. 네가 나중에 결혼하게 될 남자는 굉장한 사람이라고. 많이 그리워 하셨던거 같아요. 아저씨를. 제가 전해 듣기론."


"같이 살던게 아니였어?"


"어릴땐 같이 살았지만, 초등학교 들어가면서 친가가 양육권이랑 친권이랑 다 가지고 갔어요. 어머니는 요양병원으로 보내버리고, 아버지가, 친가가, 조금 권력도 재산도 있는 사람이라 저는 어머니와 헤어져야 했죠. 다 옛날 얘기지만요."


 소문이, 그랬던거 같다. 조용하고 얌전한 여학생 하나가  옆 학교 부잣집 남학생 하나와 사귀다가 사고 쳤다고. 여학생은 임신해버려 자퇴하고, 남학생은 집안에서 일 덮는다고 이리저리 불려다니고. 그게 시타였을 줄이야. 그저 그 당시 인사도 없이 도망친 시타가 미웠지만, 이거랑은 다른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전혀 그럴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그래서 어머니는, 제가 아저씨와 결혼하길 바라셨고, 최고의 남자를 만나길 바라셨어요. 시아버님께 허락도 받았고, 제가 말씀 드린다고 했더니, 시아버님은 자신이 직접 전해주겠다며, 저는 짐 챙기고 준비하라고만 하셨는데… "


 종종 시타와 마주치던 시선들이나, 닿아오는 뜨거운 손가락 끝의 감각이 떠올랐다. 심장이 마구 뛰어대던, 그 아릿한 감각들. 이 아이를 그런 눈으로 바라볼 수 없을꺼라 생각된다. 이 아이를 통해서, 자신의 눈에는 시타가 보여진다. 


 "그래도, 말이 되는거라고 생각하는거냐, 지금. 너는 나 이야기 통해서 알았다 하지만, 나는 네 존재 오늘 처음 알거든? 나이차이도 있고, 무엇보다 나도 나 나름 만나는 사람도 있다고. 이렇게 무턱대고 결혼했습니다ㅡ 하면 받아줄거 같냐. "


 사실은 순 거짓말이다. 만나는 사람은 커녕 일에 치여 매일을 무의미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래도 상도덕이라는게 있지. 이건 아니였다. 아무리 제 아버지의, 시타의 부탁인들 하던간에. 애초에 근 20년간 연락도 없이 지내오던 시타가, 갑자기 자기는 죽어버리고, 딸을 보내버리면 누가 기분이 언짢아 지지 않겠는가. 이건 무슨 책임전가도 아니고. 내 애도 아닌데! 내 애가 아니니까, 결혼을 시킨건가


"앗, 그, 그렇다면


 그래도, 누가 그 딸 아니랄까봐, 울먹이는 모습에서, 마치 강아지 꼬리가 축 늘어진 것 같아 보이는 이미지까지, 제 어미와 똑 빼 닮은게, 가슴 한켠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저, 그래도 이제 돌아갈 곳 없고… 손을 꼼지락 거리며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니, 마치 중학교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시타와도 이런적이 있었다. 한참 사춘기에 막 접어들때즈음, 시타가 놀자고 내 손을 덥석 잡자, 내가 괜시리 예민하게 반응하며 여자랑은 안놀아, 라며 흑역사를 만들어 낸적이 있다. 그때도, 시타는 이렇게 강아지처럼 귀와 꼬리를 내렸다. 적어도 내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젠장, 또 마음 약해지게.


 "친가는? 친가에서 지냈다며. "


 "아버지는… 글쎄, 어머니가 진행해오던 제 결혼 사실을 아시더니, 저보고 나가라 하셨어요. 화가 많이 나신것 같았어요. 모두가 말렸는데도 계속 그러시고. 다시는 돌아오지 말래요. "


 "친구나? 학교는?"


"학교는 이 근처 동경사립학원에… 그치만, 누구 신세질 정도로 친한 친구도 없어요."


 동경사립학원이라니, 새삼 이 녀석이 부잣집 딸 아가씨라는 걸 깨닫는다. 조금 상황파악이 되자 다른 여러가지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녀가 입은 재질좋은, 유명한 브랜드의 원피스에서 부터, 보석박힌 머리 띠와, 저기 현관문 근처에 놓여진 구두와 캐리어까지. 철없는 부잣집 소녀 마냥 느껴진다 아니, 사실은 그게 진실이지만. 


 "…아버지 연락처, 나한테 줘. 내가 얘기해볼테니까. 너도 네 엄마의 이상한 일에 엮이지 말고. 네가 원하는 것도 아니잖아?"


 잘 달래서 집에 보내주면 되겠지. 우물쭈물해 하는 소녀의 모습이 무척이나 귀여워 보였다. 처음 봤을때 부터 취향일정도로 귀여웠지만, 이건 아니였다. 


"제가 원하는게 맞다면요…?"


 뭐라고?


"저 아저씨 이야기, 말을 이해할수 있을때부터 들었었어요. 평생을 아저씨가 어떤 사람일까 궁굼해 하며, 오늘만을 기다려왔어요. 그렇다 해도 안되는 거에요?"


오, 맙소사. 이 아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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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글들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현대AU


 "일어나 하향, 언제까지 잘꺼야 이 잠꾸러기야."

 창문사이로 새어나오는 따사로운 햇빛에 하향은 푹신푹신한 이불의 품으로 파고 들었다. 

 "으응… 5분만 더…"

 "어서 일어나, 안 그러면 내가 널 독차지 할 시간이 얼마 안 남는단 말야."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쓸어넘기고 허리를 숙여 이마에 가볍게 뽀뽀를 한다. 

 "간만의 휴가인데 이런 날은 조금 늦게까지 자도 봐주는거 없는거야?"

 살짝 울상인채로 하향은 민호를 올려다본다. 강아지 눈망울 처럼 촉촉하게 젖은게, 마냥 그녀의 뒤를 보면 꼬리가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었다. 

 "굿모닝 키스 해주면 한번 생각 해볼께."

 짖궂게 웃는 민호와 그런 그가 못말리다는 듯 허, 짧은 감탄사를 내뱉고 양팔을 벌려 민호보고 껴안아 달라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민호는 하향이 사랑스럽다는 듯 애정 가득한 두 눈으로 그녀를 담다가 꼬옥 껴안아주고, 가볍게 쪽쪽 입을 맞추기 시작했다. 거기서 멈추는게 하향의 계획이었다면, 민호는 종종 하향의 계획을 산산조각 내는 걸 아주 잘했다.

 쪽쪽 애기들 뽀뽀 수준에서 시작했다면 민호는 이런 훌륭한 기회를 놓칠리가 없었다. 그녀의 아랫입술을 살짝 핥고 윗입술과 같이 먹어버릴듯 삼키었다. 아랫입술을 피가 나지 않을 정도로만 깨물자, 철벽같던 그녀의 입술 사이가 벌려졌고, 그 틈을 타 민호는 자신의 혀를 들이밀었다. 말랑말랑한 연한 살이 제 혀의 촉감에 느껴졌다. 혀와 혀가 얽히고 정신없이 애정행위를 하다 보니 어느새 민호는 하향 위에 올라타 그녀의 상의 안에 손을 넣은채 속옷이 드러나기 직전까지 옷을 말아 올린 채 였다. 민호의 입술을 그녀의 턱을 타고 내려와 목을 지나, 그녀의 쇄골 근처에서 빨간 자국들을 남기기 시작했고, 한 손은 그녀의 왼쪽 가슴에, 다른 한 손은 그녀가 입고 있던 짧은 반바지의 허리부분을 붙잡고있었다.

 "민호, 나 아침부터 운동하기 싫은데…"

 조금은 부끄러운듯 살짝 빨개진 얼굴로 하향 위에서 그녀를 내려다 보는 민호를 보며 말을 꺼냈다. 수줍어 하는 얼굴을 본 민호는 그의 작은 아들이 일어나려고 하는 것을 느꼈다. 씨익 웃고 그녀의 바지를 내리려는 순간, 굳게 닫혀 있던 침실의 문이 열렸다. 

 "다녀왔어 하향."

 "앗, 뉴트! 어서와!어, 지금, 상황이 이래서 들어오는 소리를 못들었어. 미안"

 하향은 민호 아래 깔린채 허우적대고 있었고, 민호는 문을 열고 들어온 뉴트를 있는 힘껏 째려보고 있었다. 둘이서 좋은 시간 보내고 있었는데, 네가 들어오는 바람에 방해받았다, 라는 기운을 풀풀 내며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민호는 입을 열었다.

 "어, 왔냐, 다시 나가지 그래? "

 "너네 먹여 살릴려고 밤새 일하다 온 사람한테 너무 한거 아니야?"

 뉴트가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키득거리며 말한다. 너만 돈버냐, 라며 툴툴거리는 민호를 뒤로하고 뉴트는 하향에게 다가가 이마에 쪽, 입술을 맞춘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버린건지, 분명 예전엔 셋은 둘도없는 친한 친구사이었다. 중학교때 만나. 고등학교를 같이 가고, 어쩌다 보니 우연인지는 모르겠으나 전공은 달라도 같은 대학까지다니고, 대략 반평생을 같이한 친구들이었다. 일단, 하향은 그들을 가족이라 여기며 그렇게 살아왔다. 그녀의 부모님이 예기치 못한 사고로 갑작스레 돌아가셨을때도, 하향은 그때 그녀의 세상이 무너지는줄 알았을때, 그 둘이 묵묵히 그녀 곁을 지켜주었고 가족이라는 그녀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약해질대로 약해진 그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가족이라는 틀에 더더욱 파고 들었다. 유일하게 그녀가 서 있을 곳이 그들이 만들어준 가족이라는 틀임을 알자, 하향은 묘하게 그 자리에 집착했다. 조금이라도 금이 가지 않도록. 그러나 그녀의 소중한 자리를 산산조각낸건 하향의 24살 때 생일, 셋이서 조촐하게 파티를 하던 밤, 뉴트와 민호였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살짝 취기가 올라오는게 적당히 기분이 좋았다. 불빛은 은은하게 켜져있었고 나름 그녀의 취향에 맞춘다고 둘은 온방을 촛불로 가득채웠다. 민호의 어깨에 살짝 기댄채 영화를 보고 있었고, 뉴트는 부엌에서 간식거리를 만들고 있었다. 민호가 달싹거리던 입술을 떼어내더니, 핵폭탄을 떨어트릴 준비를하고 있었다. 

 좋아해, 라는 소리를 들었을땐 처음에는 영화에서 들려오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러나 민호가 재차 확인하듯 그녀의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추고, 또박또박 다시 그 단어를 반복했을때, 그녀의 눈에는 설레임보단 당혹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침 부엌에서 나와 그 장면을 목격한 뉴트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민호가 제게 들려준 똑같은 단어를 내뱉었다. 그녀는 당혹감을 넘어서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둘중 한명을 고르라는 그들의 소리없는 재촉에, 그녀는 도망쳤다.
 
 하향은 그 둘을 정말로 공평하게 똑같이 사랑하고 있었다. 그 가족같은 관계가 깨지지 않길 바래왔고 누군가를 고르라는 말은 절대 그녀가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들과 키스하고, 애정을 나누고, 밤을 보내라하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누군가를 선택하고 누군가를 버린다는건 그녀가 갈구하던 관계가 와장창 깨지는 것을 의미했기에, 절대로 선택 할 수 가 없었다. 그 날 이후로 그녀는 집안에만 틀어박혀, 둘중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다. 이미 끝나버렸을꺼라 예상한 그들의 관계에 그녀는 매일밤을 울며 지새웠다. 그렇게, 점점 야위여져 가며 일주일을 지낸날, 뉴트와 민호는 하다 못해 그녀의 집으로 쳐들어와 자신들이 생각이 짧았다며, 계속 사과했다. 그리고 그녀에게 셋이서 살자고 제안을 했다. 둘중 누구를 택하라는 선택을 강요하지 않을테니, 그저 자신들을 공평하게만 사랑해달라고, 그것만을 약속해왔다. 이미 이성적인 생각이 불가능했던 하향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도 그렇게, 지금 이렇게 된 것이다. 

 옛날 생각에 푹 빠져 있던 하향을 정신차리게 만든건 또 다시 깊숙히 침범해 오는 민호의 손이었다. 

 "자,잠깐만! 지금 뉴트도 왔고…!"

 민호는 전혀 그런 사실을 개의치 않아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뭐, 별로 내키진 않지만, 오랜만에 셋이서 하지. 뉴트?"

 "나도 네 녀석이 같이 한다는게 별로지만, 이번만은 참아주지."

 뉴트는 단정하게 매여있던 넥타이를 거칠게 당기고 곱게 닫혀있던 단추를 하나 둘 푸르기 시작했다. 전에 셋이서 했을때를 떠올리며 하향은 밑에서 바둥바둥거렸다.  절대, 절대로 안됬다. 짐승같은 체력에 지치다 못해 기절하기 직전까지 갔던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니, 민호는 원래 운동을 하니까 그렇다 쳐도 뉴트 너는 뭔데-! 하향은 속으로 빼액 질렀다. 숨 고를 틈조차 주지 않고 거칠게 밀고 들어오던 뉴트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기억나 얼굴에 열이 확 하고 올라왔다. 그녀가 그 둘을 바라 보았을땐 이미 늦었다고 생각했다. 민호는 옷을 완전히 걷어 올려 그녀의 가슴을 잘근잘근 깨물며 잇자국을 남기고 있었고, 뉴트는 그녀의 다리를 억지로 벌려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고 연한 허벅지 안쪽 살까지 빨간자국을 잔뜩 남기고 있었다. 우와아, 진짜 시각적으로 너무 야해… 저항은 하려 했으나 굳세게 잡고있는 뉴트의 손에 그 계획은 무산되었다. 게다가 아직 자유롭던 두 손으로 민호를 밀어내려하자 민호는 단호하게 그의 큰 손 하나로 하향의 양 손목을 잡더니 위로 올려 붙잡고 있었다. 틀렸어 이미. 빠져나갈 길이 없어! 거의 반쯤 포기한채 몸에 힘을 빼고, 뉴트의 나쁜 손이 바지를 내리고 이제 속옷안으로 손을 넣으려던 순간, 딩동, 하고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순간적으로 찾아온 정적에 처음엔 뉴트와 민호 둘다 그 소리를 외면하려 했으나  두번째로 들려오는 초인종소리와, 낯선 목소리가 결국 그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녀의 위에서 내려오게 만들었다.

 "택배입니다."

 택배 아저씨, 사랑해요! 제 생명의 은인이예요! 어, 그런데 지금 짐승 두마리가 엄청 험악한 표정 짓고 그 쪽으로 가고 있어요. 고민의 명복을 바랄께요. 

 속으로 얼굴 모를 택배아저씨에 대한 사랑과 명복을 남발하고, 하향은 그 틈을 타 얼른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닫힌 문 뒤로 느껴지는 불쌍함에 결국 마음이 약해진채 하향은 욕실 문을 빼꼼 열고 얼굴을 살짝 내밀었다.

 "나 지금 씻을건데, 같이 씼을 사람…?"

그녀의 말에 오묘한 미소를 지은 두 짐승은 재 빠르게 욕실로 향해 걸어갔다.


어머니, 제가 방금 제 무덤을 판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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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뭄


홀든가 이야기


W.카요





 형이 죽었다. 굳이 어느쪽이라고 묻는다면, 평생을 불로불생할것만 같았던 큰형이 죽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전장에서 열렬히 싸우다 죽은것도 아니다. 갑자기, 어느날, 믿기지 않을정도로 조용히 죽었다. 아침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시간에 일어나 거실을 나갔는데도, 큰형이 없자 웬일인가 싶어 깨우러 큰형방에 들어갔었다. 아직도 자는거야? 장난치는 목소리로 방문을 열자, 고요했다. 마치 시간조차 얼어붙은 것처럼, 세상에 큰형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이상한기분이들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조용히 침대위에 누워 잠들어있는 큰형의 모습에, 나는 이질감을 느꼈다.   


"형...?"


불러도 대답하지않는다. 소리가 돌아오지 않는다. 무슨일이있어도 꿋꿋한 목소리로, 왜그러느냐 이글, 하던 소리가 더이상 들려오지않는다. 고요한 방속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을 느꼈다. 아니, 내가 타인이 되어 그 고요함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저 가만히 서있었을 뿐이다. 마치 남의 일인양,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회사에 연락을했다. 드렉슬러가 알겠다고 곧 온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가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가만히 침대 끝자락에 걸터 앉았다. 혹시라도 형이 깨지않도록. 가만히 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요함만이 이곳에서 유일한 존재였다.


작은형이 다급하게 큰형의 이름을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온것은 이미 사람들로 집안가득 북적이고 있던 중이였다. 평생볼까말까하는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눈시울에 조금 붉어져 있는게 눈에 보였다. 나의 눈가는 여전히 건조했다. 


장례식을 치루게됬다. 첫째날은 가문사람들이 찾아왔다. 가문과 연관된, 그쪽 부류의 사람들. 진심으로 애도 하는이들도 있었지만, 가식적으로 눈물을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나같이 똑같은 표정을 하루종일 쳐다보고있자니 따분했다.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있는것도 지겨웠다. 나의 얼굴은 건조하다 못해 말라 비틀어질 정도였다. 


둘째날은 회사사람들, 재단사람들, 연합사람들, 그 외에 모든 인연이있었던 사이퍼들이 찾아왔다. 그것이 적으로써 만났던가에 개의치 않고, 그들은 진심으로 애도해주었다. 눈물을 흘린 이들도 꽤나 있었다. 부르스 영감이 나에게 다가와 등을 토닥여주었다. 친하지 않던사이에 주고받는 위로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마틴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해가 가지않는다는듯 "어째선가요?" 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바삐 떴다. 마를렌과 샬렷녀셕이 큰형의 사진앞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복도끝까지 그들의 울움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이 전부 둘의 눈물만으로도 차버리지 않을까 라는 쓸데없는 고민도 했다. 저 모습을 보고있자니, 이제는 얼굴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타버리는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느낄수가 없었다. 공허했다. 텅빈 우주속에 나 혼자만이 남은듯 공허했다. 


마지막날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작은 형이 큰형사진 앞에서서 중얼거리는 모습을 봤다. 하얗고 작던 얼굴이 동백꽃처럼 붉게 피어올랐다. 장례식을 도와주던 사람들중 누군가가 나보고 이제 인사할차례라며 등을 떠밀었다. 나는 그 사진 앞에 서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가만히 그저 사진속 큰형의 무덤덤한 표정을 쳐다볼뿐이었다. 의미없는 '인사'를 끝내고 난후 장례식을 끝맺혔다. 애초에 형이 흔적을 남기는 성격이 아니라 유품은 옷과 검뿐이었다. 옷은 절차에 따라 시신과함께 같이 태워버렸다. 내 손에 남은 건 검뿐이었다. 큰형은 처음 이 검을 받은 후로 부터 계속 이 검 하나만을 사용해 왔다. 거의 평생을 형의 반려자로써 곁에 있어왔다 해도 틀린것이없다.  그 검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질적 대련상대를 해주오던 형의 기억이 떠올랐다.


'검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것이 아니다 이글. 심신을 가다듬고, 눈앞의 형체뿐만이 아니라, 그 속의 내면까지 벤다는일념으로 베는것이다.'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던 큰형의 말들이 조금씩 세월이 지나면서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되었다.


'자세부터 다시 똑바로해라 이글.'


'홀든가로 태어난 이상, 너에겐 선택권이없다 이글.'


'백번더, 다시 휘둘러라!'


'아픔도 상처도 모두 전쟁터에 나가는 검사들에겐 그저 자랑스러운 영관의 표시 일뿐이다 이글. 그 흉터를 자랑스럽게 여기거라. 네 흉터를 , 나의 흉터를.'


'미안하구나 이글. 너에게 만은 같은 상처, 입히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는데. 홀든가가 아니라, 네 형으로써 미안하구나, 나의 동생.'


'...잘했다, 이글.'



갑자기 쏟아져 오는 옛 기억 때문에 텅 비어있던 공간이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목이 탁, 하고 막혀왔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눈가에서 촉촉한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눈믈 흘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사람인냥 엉엉 무릎을 꿇은채 검을 품안에 안고 울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형은 정말로 죽은거구나. 이제 더 이상 검을 휘두르는 자세가 틀리다며 지적하며 혼내줄 사람도, 나를 위해 진심의 눈물을 흘려줄 이도, 애정어린 눈으로 잘했다며 칭찬해주며 머리를 줄 누군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않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따듯하게만 느껴지던 봄바람이 유달리 쌀쌀하게만 느껴졌다. 나에게 봄은 오지 않고, 겨울만이 다시 되돌아왔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언제라도 네가 힘들면 네 등을 토닥여줄께. 힘들다고 느끼면 언제나 네 눈가의 눈물을 닦아 줄께. 더 이상 눈물 흘리지 않도록, 내가 옆에서 두손 꼭 잡고 있을께. 그러니까, 힘들다고 생각하면, 언제나 네 옆에 있어줄테니, 포기하지 말아줘. 네가 사랑하지 않아도 누군가를 너를 상상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렴. 네 눈길 한번 없어도 네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을 혼자서 전하고 있음을 알고만 있으렴. 너를 향한 이 마음을 혼자 소중히 간직해주렴. 네모난 상자에 가득 채워 놓고, 지칠때마다 열어서 조금씩 꺼내 보는거야. 네 허물어진 마음을 달래줄테니. 상처가 났다면 꼬매고 구멍이 났다면 메우면 되는거야. 그리 어렵지않아, 내가 여기 있으니까. 

 남몰래 눈물을 훔치려 한다면 내가 옆에서 그 눈물 닦아 줄께. 다시는 혼자라고 느끼지 않도록, 언제나 옆에 있어줄께.너라는 씨앗에게 거름이되고 물이 되고 햇빛이 되어줄께. 너라는 씨앗이 미래의 아름다운 꽃이 될 수 있도록 언제나 네 손을 놓지 않을께. 그러니, 제발, 포기하지 말아줘, 내 사랑아, 아름다운 내 사랑아


오이카와 토오루X스가와라 코우시



인생 제 1막 


​W.카요




*엄청난 설정 날조: 스가와라와 오이카와가 같은 고등학교. 오이카와가 스가와라의 2년 선배. 현대AU. 배구를 하지 않습니다. 오이카와가 입시생입니다 수능봐요 수능, 이와이즈미가 미술을 합니다. 미술입시생!!!(아련ㄴ...) 제일중요한 스가와라가 트위터를 합ㄴ디ㅏ....트위터.....이와이즈미랑 오이카와도 틔텨함



  그를 처음 만난건 트위터에서 였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방학, 스가와라는 여전히 새벽까지 트위터를 하며 늦게 잠들었다. 그는 현실과는 달리 자신의 취미생활을 이해해주고, 자신이 어떤 모습이던 상관없이 좋아해주는 사람이 가득이라, 그들과 어울려 노는데에 푹 빠져있었다; 그렇다고 밖에서 일상을 제대로 지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였다. 그저 모든걸 다 솔직하게 말할수 있는, 숨쉴 곳이 필요해서 시작한게 트위터 였다. 같은 고등학교 학생을 찾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트윗을 날렸었다. 그날, 학교선배 두명이 자신에게 다가와줬다. 


 둘은 친구라고 했다. 이와이즈미선배는 미술입시를 하던중이었고, 오이카와선배는 여러가지 의미로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렇게 친해지고, 고등학교에 드디어 입학하게 되서, 선배들의 얼굴을 보게 된 스가와라는 생각보다 훨씬 친철한 사람들이라 그저 즐겁기만 하였다. 5월중순에 체육대회때, 일학년인 자신을 제 반에 스며들지 못하자, 삼학년들 사이에 데려와 같이 놀아주었다. 스가와라는 그날이 제 평생 가장 즐거운 체육대회라 생각했다. 그날 친해진 다른 선배들이 오이카와선배의 다른 옛날 사진을 보내주었다. 개구리 탈을 쓰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한장이 스가와라의 눈에 들어왔다. 귀엽다고 생각했다. 


 기말고사가 끝나고 7월초, 학교에서는 무슨 걷기대회를 했다. 고등학생이나 되서 왜 이런 걸 해야하는지는 잘 몰랐지만, 행사 당일 전날밤, 오이카와선배가 이와이즈미 선배랑 셋이서 도시락싸간다며 이왕 가는 김에 소풍기분이나 내자며 같이 하자고 멘션을 보내왔다. 그날밤, 밤새 설렘에 뒤척였다. 걷기가 끝나고 조금 지친상태로 선배들과 만나서 스가와라는 도시락을 열었다. 셋이서 벤치에 앉아 제대로 된 돗자리도 없이, 뭐가 그리 즐거운 건지 웃고 떠들며 도시락을 먹었다. 행사가 다끝나고 다들 집에 가자, 오이카와 선배가 자기가 보고싶어하던 영화가 개봉했다며 같이 보러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이와이즈미선배는 학원이 있어서 안된다 했고, 나는 아직 시간 널널해서 괜찮다고, 보러가자고 했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는 영화라고 했다. 

 

 둘이 영화관에 도착했을땐, 오이카와 선배가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그때 깨달았다. 여기까지와서 그냥 가기도 그러니까 영화표는 자신이 산다고 했다. 미안함에 어쩔줄 몰라하자 괜찮으니까 다음에 맛있는거 사달라고 스가와라는 말했다. 영화는 재미있었다. 그 영화를 주제로 트위터에서도 한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영화도 재미있었지만 선배와 나누는 대화가 즐겁다고 느꼈다. 영화를 기다리면서도 학교이외에서의 선배의 새로운 모습에 대해 알게 되었다. 조금은 더 선배에게 다가간 기분이라 스가와라는 기뻤다. 


 시간이 지날수록 선배들과 만나기 힘들어졌다. 간간히 점심시간에 나와서 산책하는 선배들을 발견할때는 숨이 차는 것도 모르고 뛰어갈때도 있었다. 셋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보냈다. 힘이 다빠질 정도로 날씨가 더울때는 나무밑 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오이카와선배는 힘들다며 자신의 무릎을 베며 누웠다. 스가와라는 선배의 머리카락이 꼭 강아지 같다고 생각했다. 


 수능이 다가오자 둘 다 바빠졌다. 이와이즈미 선배는 미술입시하느라 얼굴조차 보기 힘들었고, 오이카와선배 또한 수험공부때문에 지쳐보였다. 수능 보기 삼일전, 스가와라는 정성을 다해 선물을 포장하고 둘에게 주었다. 어느새 스가와라는 삼학년 교실을 제 교실 드나들듯 다녔다. 알아 차렸을땐 이미 자신에게 오이카와 선배 덕후라는 별명이 지어진 후였다. 


 수능이 끝나고 선배들은 더 이상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배들의 얼굴을 보기 힘들어지자, 조금은 외롭다고 느꼈다. 하루 일과처럼 선배들을 보러 삼학년 건물을 가던 발길도 끊긴지 이제 오래됐다. 그러나 아직은 괜찮았다. 이와이즈미 선배는 미술입시 때문에 자주 못봤지만, 오이카와 선배는 트위터만 들어가면 볼수 있었다. 1학년들도 막 기말고사가 끝나던 12월, 스가와라는 또 다시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새벽까지 트위터에서 놀았다. 이번엔 오이카와 선배와 함께. 


 해가 바뀌고 2월이 되어 선배들이 졸업을 했다. 이와이즈미 선배는 원하는 대학에 합격을 했다. 진심으로 축하를 해줬다. 오이카와 선배는 평소실력보다 수능을 망쳐서, 고민을 했지만, 결국엔 대학을 갔다. 다행이도 원하는 과에 갔다고 한다. 졸업식만큼은 꼭 가겠다고 약속한 스가와라는 결국 그날 아침부터 열이 올라 오후까지 침대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어지러운 와중에도 중간에 일어나서 졸업식 못 갈거같다고 미안하다고 전하던 기억이 언뜻 났다. 눈을 다시 떳을떈 이미 오후5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졸업식을 못간게 스가와라는 평생 두고두고 후회가 됬다.


 2학년이 되서고 스가와라는 여전히 트위터를 했다. 다만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오이카와 선배가 외로워한다는게 보였다. 트위터에서도 외롭다며 한탄을 하는게 종종 보였다. 괜찮다고, 내가 여기 있다고 스가와라는 애써 위로를 해줬다. 얼마안가 장염으로 병원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병문안을 가려 했으나 하필이면 가족여행과 겹쳐버렸던 것이다. 미안하다고 스가와라는 전했다. 다행이도 막판에 여행이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병문안을 갈수 있게 되었다. 스가와라는 오이카와가 좋아하는 단것들을 잔뜩 들고 가져갔다. 병원복을 입은 선배가 조금은 안쓰러워보인다고 생각했다.  


 퇴원을 하고 오이카와 선배는 대학을 다니고 스가와라는 학교를 다녔다. 아직도 오이카와 선배가 외로워하는게 보였다. 그럴때마다 스가와라는 진심으로 오이카와 선배에게, 힘내라고, 자신도 언제나 곁에 있다며 언제나 선배를 좋아한다고 말해주었다. 안고싶은 '좋아' 보단 존경한다는, 선배로써의 '좋아' 였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라는듯, 오이카와 선배는 그저 고맙다고만 해주었다. 


 오이카와 선배가 술에 잔뜩 취해 전화를 했다. 어차피 남는게 시간이었으니 선배가 있는 곳으로 갔다. 선배는 혼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많이 마셨다며 이제 그만 하고 일어나라고 재촉하는 스가와라를 붙잡았다. 조금은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보자 오이카와 선배는 조금 꼬인 듯한 혀로 말을 꺼냈다. 자신을 좋아해서 줘서 고맙다고. 네네,라며 얼른 달래주고 집에 데려가려 하자 다시 한번더 오이카와는 스가와라를 붙잡고 「너만 괜찮다면 네 마음을 받아주고 싶어.」라고 말했다. 이게 무슨 술주정인가 싶었으나 뭔가 떠오르는게 있었다. 그 동안의 자신의 '좋아'가 이 사람에겐 막연한 후배의 사랑이 아닌 안고싶은 '좋아'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것이다. 그제서야 가끔 쓸쓸히 뒷말에 「미안해.」라고 하던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자신이 착각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창피해 할까봐 일부러 돌려말했다. 자신은 동성연애는 처음일 뿐더러 잘 챙겨주지도 못할게 뻔하다고. 자기보다 좀더 좋은 사람을 만나는게 선배에게 더 좋은 일 일꺼라고. 선배를 좋아하지만 자신이 없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하면 알아서 받아들일꺼라 생각했다. 스가와라는 체념을 예상한채 오이카와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들려오는건 의외의 대답이었다. 괜찮으니까, 사귈수 있다, 라고. 한동안의 쓸쓸하고 외로워하던 선배의 모습이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아 결국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고맙다고 해주었다. 앞으로의 생활이 조금은 걱정 됬지만, 크게 문제가 될꺼란 생각은 안했다. 


 처음 사귀고 나서 몇주는 얼굴조차 못봤다. 선배는 선배대로 바쁘고 스가와라는 스가와라대로 바뻤기 때문이다. 간간히 문자만하고 트위터에서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게 전부였다. 이게 평상시랑 뭐가 다른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사귄다는 자각때문에 연락도 평소보다 덜하게 되었다. 부끄러웠던 걸까, 어렸던것 같았다, 이땐. 


 여름에서 서서히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할때 쯔음, 선배가 학교에 놀러왔다고 문자를 보냈다. 급식을 먹다 말고 스가와라는 나머지는 버리고 급히 선배가 있다는 곳으로 뛰어갔다. 빨간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선배가 우리가 종종 점심시간에 앉아 있던 그 곳에 앉아있었다. 어째서인지 선배를 만난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왜인지는 스가와라는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오랜만에 봐서 그런거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보는 오이카와 선배의 모습에 스가와라는 그를 껴안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그러나 오이카와 선배는 살을 맞대는 걸 싫어한다고 했었다. 애써 들뜨는 마음을 감출수 밖에 없었다. 헐레벌떡 뛰어와서 조심스럽게 그의 옆에 앉았다. 오이카와의 사복이 멋있다고 생각했다. 잠시 들린거라 짧은 시간동안 있다 갔지만, 스가와라는 그 이후 한동안 히죽거리며 다녔었던 것 같다. 


 문자를 보내는 횟수가 점점 늘고 있었다. 어느새 보니 스가와라는 오이카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이 넘보지는 않을까, 나 없다고 쓸쓸해 하는게 아닐까. 이건 누가 봐도 명백히 사랑에 빠진 모습이었다. 처음과 달리 커져가는 스가와라의 마음과는 달리, 오이카와는 여전히 문자를 하면 단답, 조금은 대화를 이어 나가기에 힘든 답잡들을 주었다. 옛날이라면 크게 신경쓰지 않을 점들이 이제는 스가와라의 심장을 하나하나 후벼 파기 시작했다. 만지는 걸 싫어해서 껴안고 싶어도, 다가가고 싶어도 그럴수가 없었다. 섣불리 만질수도 없었다. 문자도 대화도 잘 이어지지가 않았다.  애써 아직은 자신이 그의 애인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가끔은 오이카와가 왜 자신을 받아들여 주었을까라는 의문과 함께 밤새 눈물을 흘린적이 있었다. 


 학교서 야자를 하기 위해 남아있던 어느 날, 평소엔 다섯글자이상 보내지도 않던 오이카와 선배가, 다정하게 자신의 이름을 문자로 보내주자 어쨰서 인가 그 순간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다정하게 불러줘서 너무나 고마워 해야하는 상황인데,  왠지 모르게 기분나쁜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안좋은 느낌은 항상 들어 맞는다고, 그날 밤 야자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던 길, 선배에게서 이별 아닌 이별 통보를 받았다. 「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핸드폰을 부여잡고 자신이 읽는 이 글자가 사실이 아니길 바랬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이런걸로 장난칠 성격이 아니였기에, 한동안 화면만을 바라보다가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고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보냈다. 스가와라는 자신이 선배를 붙잡고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애써 멀쩡한 척을 하며 괜찮아, 괜찮아 주문을 걸었다. 선배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거니까, 꼭 잘 되길 바란다고 말하며 스가와라는 이 이상 비참해 질 수 도 없을꺼라 생각했다. 그렇게 선배를 보내고서도, 한동안은 자신을 탓했다. 즐겁게 해주지 못해서, 조금 더 문자를 자주 보내볼 껄, 용기내어 좀 더 표현 해 볼껄, 딱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한번만 안아볼껄, 보내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스가와라는 짝사랑을 시작하며 제 연애생활을 끝냈다.


 자그마치 시작한지 두 달 된 그의 연애사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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