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와 토오루X스가와라 코우시


소설 100제 68. 넌 이걸 어떻게 견뎠어.


W.카요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코타츠 안에 누워 있던 도중, 말없이 귤을 까다 오이카와는 말을 꺼냈다. 있지 코우시. 응, 왜불러. 그냥, 너랑 이렇게 있을 수 있다는게 안 믿겨서, 행복해서 불렀어.

 그 말을 듣던 스가는 말없이 웃는다. 덕분에 그의 눈밑에 위치한 눈물점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자신의 앞에 누워있는 코우시의 쓸쓸한 등을 바라보며 그의 허리에 제 팔을 감았다. 이미 수백 번 서로의 살을 맞댔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쑥쓰러워하며 움찔거리는 그를 보면, 그 모습이 귀여워 이내 괴롭히고 싶어진다. 팔을 감고, 몸을 밀착하고, 장난스레 그의 목 뒷덜미에 살짝 깨물며 자국을 남긴다. 그만해,라며 부끄러운듯 빨개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스가는 고개를 숙인다. 가만히 그를 자신의 팔안에 가둔채 그의 향기를 맡는다. 취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 걸까. 코우시. 침묵을 깨며 그의 이름을 다시한번 불렀다.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줘서 정말로, 정말 고마워."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시합을 뛰던 그 시기, 아오바죠사이는, 카라스노에게 패했다. 3세트까지 이어가, 듀스를 거듭해 마침내 카라스노가 승리했다. 「코트 위에 설 수 있는건 강한 자 뿐이야.」라는 말이 오이카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분했다. 결국은 범인은 천재에게 당해내질 못 한다는 건가. 아련한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등학교 생활중 마지막으로 볼 코트를 쳐다보고 있자,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뒷통수를 후려 갈기며, 말을 남겼다. 「분하지만, 우리가 노력했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가서든 앞으로 미래에 배구를 하며 이기면 되는거야. 그러니까 그딴 표정 그만 짓고, 저기 누가 너 불러 달래.」이와이즈미의 말에 고개를 들자 오이카와의 눈에 들어온건 스가와라였다. 


'뭐야, 상쾌군?'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흰색바다를 가로지르기엔 너무 눈에 띄었던게 문제였던 건지, 조금은 숨이 차 보이는 모습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그, 나 카라스노 세터인데,"


"알아. 용건이 뭐야"


 날을 세우지 안을래도 그건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우린 방금 막 카라스노에게 패한 참이었고, 그는 그들의 일원이었으니까. 


"너를, 어, 그러니까, 좋아해."


 뭐? 라는 말이 입안에서 빽하고 나왔다. 당황스러웠다.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하고, 아니 그걸 떠나서 방금까지 대전 상대를 이기자 마자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녀석이 어디있냐고. 당황함만으로 가득채워진채, 미안, 이라고 하고 그 자리를 떠버렸다. 그러나 그 후에도, 스가와라는 학교앞을 찾아오는둥, 길거리에서 유난히 자주 마주치는둥, 볼때마다, 「너를 좋아해, 진심으로!」라며 매번 고백을 해왔다.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그의 끊임 없는 구애에 마음이 흔들렸던것인지, 12월 중순, 크리스마스를 앞둔 토요일, 그의 변함없는 고백에 자신도 모르게 '그래' 라고 대답한건 충동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연약하게 생겨서 매운걸 엄청 좋아한다던가, 영화를 보면 엄청 감성적이라던가, 등 뒤에 있는 점이라던가, 엄마처럼 엄청 챙겨 준다는 점이라던가, 그런 것들 때문에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게 된건 역시, 그가 세터로써 배구를 하는 모습이었을까. 어느새 먼저 연락하는 건 오이카와의 몫이 되었고, 이름을 부르는 것도, 먼저 안아주는것도, 애정표현을 하는것도 오이카와의 몫이 되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진거라 하지만, 아무렴 어때, 그런것 따위 상관없었다. 



"토오루야 말로 받아줘서 고마워. 정말로."


 처음에는 조금은 차가웠을 지도 모르는 제 행동들이 가끔 떠올랐다. 오이카와는 그때로 돌아갈수만 있다면 그 때 그 행동들을 막아버리고 싶다. 처음엔 거만하게, 네가 나에게 맞춰야지, 잘해야지, 라는 듯한 포스를 펄펄 풍기고 있었으니까. 돌아가서, 어리고 철없던 시절의 나에게, 네가 평생을 바쳐도 네게는 모자른 사람이니 제발 좀 잘해주라고 전하고 싶었다. 억지로 오이카와에게 모든걸 맞춰주며 간간히 보여주던 그 쓸쓸함 가득한 미소를 두번 다시는 짓지 않도록. 


"코우쨩은 이걸 어떻게 견딘거야? 난 지금도 코우쨩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칠것 같은데 말야."


 오랜만에 보는 그 쓸쓸한 미소였다. 저 질문을 하자 짓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금세 행복하다는 미소로 바꾸곤, 오이카와에게 시선을 맞췄다.


"토오루가 배구하던 모습을 기억하면서 버텼어. 그 모습이 내게는 제일로 멋있는 토오루의 모습이니까. "


 애초에 처음부터 자신에게 반했던 이유가, 연습시합때 처음으로 보여준 스파이크 서브 때문이라고 말하며 수줍게 볼을 붉히는 스가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그저 그를 자신의 품안에 깊숙히 넣었다.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앞으로도, 평생동안, 이 모습은 자신의 소유물이었고, 평생 다른이에게 넘겨주지 않을꺼라 다짐하며 고마워, 행복하게 해줄께, 라는 둥 조금은 부끄러운 고백을 하며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이마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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