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지루한 일상의반복속에서 메말라가던 내게, 너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갑자기 나타났어. 내 인생에 순식간에 파고들어, 내게 대처할 기회조차 안주더라. 

너를 처음 마주한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날, 나는 천사를 보았어 분명.


서울에서 전학왔다며 수줍게 교탁 앞에 서서 인사하는 네 모습 뒤에, 꽃잎이 흩날리는걸 보았어. 살짝 홍조를 띄운채 네 이름을 말하고 너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비어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어. 만화나 소설속에선 보통 주인공이 될 사람의 옆자리에 앉던데, 이떄부터 난 알아 차렸어야 하나봐. 내가 네 인생에 있어서 주인공이 될 일은 죽어도 없다는걸. 내 자리에서 가장 먼 맨 마지막 구석에 앉았지 너는. 내가 앞에 앉은 탓에 마음대로 네 뒷모습도 구경 못하고, 그렇다고 내 성격에 먼저 쉬는시간에 다가가 말을 나눌 수가 없었어. 


 그렇게 네가 전학오고도 분명 몇주는 흘렀을꺼야, 여전히 너와 한마디조차 못했었거든. 항상 틈만 나면 너를 쳐다보고 있었는데도, 너도 참 무심하지, 그걸 눈치 못채고. 체육시간때, 네가 혼자 배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 처음으로, 그때가 말로 처음으로 말을 건넸던거 같아. 


왜 혼자 있어?


그 물음에 너는 다들 축구한다고 나가버렸다고 대답했어. 배구는 의외로 비인기 종목이라 다들하기 싫어한다고. 그런 네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워 보였어. 혼자만 특이하게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홀로 외톨이 신세라는건 어떤 기분인지 내가 제일 잘 알았으니까. 무슨 용기가 났던 건지는 몰라도, 그때 네게 배구를 가르쳐 달라고 한건,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일 일지도 몰라. 그게 너와 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었거든.

 그 날 오후, 도서관에서 배구에 관한 책을 찾느라 꽤나 애 먹었던거 같아.


 이후 우리의 관계가 눈에 띄게 달라진건 아니였어. 나는 여전히 소심했고, 너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 유일하게 둘만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방과후 체육관에서 이려나. 누가 먼저 말을 꺼낸것도 아닌데, 그 시간만 되면, 너와 나는 자연스럽게 그 곳에서 모였어. 둘이서 배구를 했었지. 한동안은 일방적으로 너에게 가르침을 받는것 뿐이었지만. 가끔 같이 하교를 하고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다거나 그런 일이 있을때면 나는 너무 기뻐서 죽을것만 같았어. 너는 내게 첫사랑이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생긴 친구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날인가 부터 너는 이 곳에 오는 횟수가 줄기 시작했어. 그래도 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매일 이곳에 나왔어. 혹시나 너를 볼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그렇게 이주를 흘려 보냈을까, 내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마침내 네가 왔어.

  얼굴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어. 적어도 얼굴을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많다고 생각했지. 막상 이렇게 보니까, 입을 못 열겠더라. 겨우겨우 입술을 떼고 한 말이 잘지냈어, 그뿐이었어. 너는 여전히 그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응, 이라며 나에게 웃어줬어. 


 많이 바쁜거야?


  너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저었어. 바쁘다기 보단, 음, 애인이 생겼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더라. 


그래서 그런데 앞으로 너 배구 가르쳐 주기 힘들거 같아. 미안.


 내가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자기딴에 애인이랑 데이트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그래서 그렇다고 했었다. 나는 너랑 배구하는 이 시간에 제일 중요했는데. 눈물이고 뭐고 그런건 없었어. 다만 고백하기도 전에 차인 기분이라 공허함은 감출 수 가 없더라. 그렇게 너와 나를 유일하게 이어주던 연결고리가 무자비하게 끊겨버렸어. 다시 나는 너를 지켜보기만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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