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씨코믹스 패러디

제이슨 토드


IF 제이슨이 조커에게 죽임 당하지 않고, 평범하게 자라왔다면, 평범하게 학교다니며 자경단 활동하는 세계.

제이슨의 말투가 쵸큼 다정한것. 놀랍게도 그럼에도 레드후드가 된 세계.

나는 그저 대학 다니는 제이슨이 보고싶은것



전편은 이쪽







 


 제이슨 토드에게는 분노와 허망함, 공포 외 감정이란 무지의 공간같았다. 지금까지는 물론이거니와 앞으로도 그 외의 감정을 느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사랑같은 유치한 감정은. 조커에게 붙잡혔던 날, 목숨이 날아갔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정말 극적으로, 흔한 드라마에 나올법한 결말처럼, 극적으로 목숨을 부지했다. 브루스는 그날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했다. 그의 목숨을 손에 쥐고 있던 것은 다름아닌 조켜였다. 그를 사지로 몰아 넣은것도 조커였다. 그를 몰아넣는데 일조 한것은 제이슨의 어머니였다. 함정인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이슨은 그 함정속으로 제 발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울었다. 미안하다며, 저가 생각이 짧았다고 울부짖었다. 그녀의 눈에서는 진심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서 공포를 느꼈다. 어머니는 죽기 싫다며 살려달라 빌고 있었다. 그의 인생 통틀어, 어머니의 살려달라는 눈빛이 그의 심장을 관통했다. 목이, 숨통이 옥죄여왔다. 결국 그를 놓아준건 조커의 변덕이었다. 배트맨의 절망보다는 로빈의 절망이 더 궁금해졌다고 했다.그 이후로 제이슨은 크게 변했다. 더욱더 사나워졌고, 자비는 그 날 이후로 모습을 감추었다. 팀의 말을 빌리자면, 심장이 차갑게 얼어붙었다고 했다. 알프레드의 오랜 노력끝에 그가 유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가족들 뿐이었다. 타인에게는 그는 관심을 두지도 않았고, 두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 그녀를 마주했을때 느낀 간질거림음 너무나 낯설었다. 처음에는 몸에 이상이 생긴줄알았다. 처음으로 느끼는 무언가였으니까. 그때는 이것이 감정이라는 인식조차 없었다. 무언가의 간질거림이 제 심장에서 비롯되고 있다는걸 깨달은건, 그녀와 두번째 마주쳤을때였다. 그 강의실 안에서 두번이고 세번이고, 그녀와 마주칠때만 심장이 더 빠르게 고동치는게 느껴졌다. 다른사람을 볼때는 아무렇지도 않던 맥박이, 그녀가 시야에 들어오면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그는 깨달았다. 제이슨은 그녀를 애정하고 있었다. 특별한 의미로.

 몸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머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척이나 다른 것이었다. 몸은 저 스스로 제어가 불가능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는 그녀에게 끌리고 있었다. 그러나 제이슨의 의식은 조금 달랐다. 그는 스스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고 있었다. 낮에는 평범한 대학생, 밤에는 고담시를 돌아다니는 레드후드. 그는 항상 죽음과 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보기에는, 평생을 살면서 그런 죽음과는 접점조차 없을 것 처럼 보였다. 레드후드에게는, 그녀는 너무나 큰 리스크였다. 갑작스러운 변화일것이 분명했다. 그는 과거에도, 누군가를 향한 그의 사랑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뻔했다. 모든것은 그가 '로빈' 이었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의 특별한 감정이 그녀에게 무슨 일을 일으킬지 그는 가늠조차 하지 못했다. 팀도, 그가 로빈이었기에, 그렇기에 그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다. 박쥐에게 유일하게 허락되는 것은 어둠 속 고독이었다. 

 옥상 난간에 걸터앉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고담은 조용했다.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데, 누구라도 정신을 팔수 있게 도와줬으면 했지만, 정말로 이럴때만 도시는 조용했다. 갑갑한 마음에 헬멧을 벗었다. 가만히 그녀의 모습을 상상했다. 얼마 마주하지 못한 그가 그리는 그녀의 모습은, 반짝였다. 저 위에 제일 밝게 빛나는 별보다 더 강하게, 더 밝게 반짝이는 것 같았다. 놀란 표정으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저를 쳐다보던 그 표정도, 할리퀸을 마주한 뒤 바닥을 짚고 울던 그 모습도, 전부다 빛이 나고 있었다. 그녀는 그림자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밝은 빛 속에 존재했다. 그런 그녀를 그대로 두고 싶었다. 그럼에도, 제이슨은 그녀를 그런 그녀를 밝은 빛에서 끌어내리고 싶었다. 끌어내려, 그의 품속으로 꽁꽁 숨기고 싶었다. 

"제이?"

 뒤에서 갑자기 나타난 것은 나이트윙이었다. 벌써 그녀 생각에 정신이 흐트러진것 같았다. 딕이 뒤에서 나타난 것도 모르고.

"그 여자애에 대한거야?"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냐는 듯 쳐다보다, 이내 제이슨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딱히 그에게도 숨길 생각은 없었다. 그가 제일 먼저 눈치 챘을꺼라 생각했었다. 옆에 다가와 앉으며 도미노를 벗는다. 한참동안 침묵을 지켰다. 먼저 입을 연것은 딕이었다.

"자경단 활동을 하는 거랑, 누군가를 만난다는 거랑은 완전히 다른거라고 생각해. 나는, 물론, 리처드 그레이슨으로서, 여럿을 만나왔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것이야. 나이트윙으로서 만나온 사람들도 여럿있고. 중요한건, 네가 누구던 간에 그게 너를 옭아매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물론 위험해 질수도 있지, 그치만 지금은 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잖아? 우리같은 다 큰 건장한 성인이 누구도 안만나고 평생 살 것도 아니고 말이야. 고자가 아니고서는야. 적어도 난 그래. …구구절절 이야기 했지만 결론은, …나는 내 동생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뭐라는거야."

 퉁명스러운 대답일지 몰라도 그와 어울리지 않게 제이슨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들었다. 어쩌면 딕이 맞을지도 모른다. 모든건 다 핑계일지도 모른다. 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제이슨은 이 감정이 낯설었다. 그리고 그는 낯선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가 통제할수 없는 것은 썩 반기지 않았다. 이런면 만큼은 브루스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의 광적인 통제력을 혐오하면서도 그 또한 통제하기를 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만큼은 조금 혼란스러워도, 그 통제 불가능한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통제 또한 하나의 다른 핑계 일지도 모른다. 그저, 사랑하는 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어쩌면 겁쟁이 처럼 도망쳐온것 뿐일지도 모른다. 과거에도 잃을뻔했고, 실제로 잃은 적도 있었고, 앞으로도 잃을 것이 분명했기에. 그럼에도, 제이슨은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때의 나는 지금과 다른데. 제이슨은 더이상 '로빈'이 아니었다. 더 이상 과거 속에 갇힌 나약한 배트맨의 조수가 아니었다. 그는 제이슨 토드이고, 레드후드인 것이다.

살며시 눈을 감았다. 처음으로, 사랑을 해도 혼이 나지 않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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