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카와 토오루X스가와라 코우시


소설 100제 68. 넌 이걸 어떻게 견뎠어.


W.카요



 새해를 알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코타츠 안에 누워 있던 도중, 말없이 귤을 까다 오이카와는 말을 꺼냈다. 있지 코우시. 응, 왜불러. 그냥, 너랑 이렇게 있을 수 있다는게 안 믿겨서, 행복해서 불렀어.

 그 말을 듣던 스가는 말없이 웃는다. 덕분에 그의 눈밑에 위치한 눈물점이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자신의 앞에 누워있는 코우시의 쓸쓸한 등을 바라보며 그의 허리에 제 팔을 감았다. 이미 수백 번 서로의 살을 맞댔음에도 불구하고, 매번 쑥쓰러워하며 움찔거리는 그를 보면, 그 모습이 귀여워 이내 괴롭히고 싶어진다. 팔을 감고, 몸을 밀착하고, 장난스레 그의 목 뒷덜미에 살짝 깨물며 자국을 남긴다. 그만해,라며 부끄러운듯 빨개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스가는 고개를 숙인다. 가만히 그를 자신의 팔안에 가둔채 그의 향기를 맡는다. 취한다는 것이 이런 기분인 걸까. 코우시. 침묵을 깨며 그의 이름을 다시한번 불렀다.


"나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줘서 정말로, 정말 고마워."



고등학교 3학년, 마지막 시합을 뛰던 그 시기, 아오바죠사이는, 카라스노에게 패했다. 3세트까지 이어가, 듀스를 거듭해 마침내 카라스노가 승리했다. 「코트 위에 설 수 있는건 강한 자 뿐이야.」라는 말이 오이카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분했다. 결국은 범인은 천재에게 당해내질 못 한다는 건가. 아련한듯한 미소를 지으며 고등학교 생활중 마지막으로 볼 코트를 쳐다보고 있자,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뒷통수를 후려 갈기며, 말을 남겼다. 「분하지만, 우리가 노력했다는 사실은 없어지지 않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가서든 앞으로 미래에 배구를 하며 이기면 되는거야. 그러니까 그딴 표정 그만 짓고, 저기 누가 너 불러 달래.」이와이즈미의 말에 고개를 들자 오이카와의 눈에 들어온건 스가와라였다. 


'뭐야, 상쾌군?'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흰색바다를 가로지르기엔 너무 눈에 띄었던게 문제였던 건지, 조금은 숨이 차 보이는 모습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그, 나 카라스노 세터인데,"


"알아. 용건이 뭐야"


 날을 세우지 안을래도 그건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우린 방금 막 카라스노에게 패한 참이었고, 그는 그들의 일원이었으니까. 


"너를, 어, 그러니까, 좋아해."


 뭐? 라는 말이 입안에서 빽하고 나왔다. 당황스러웠다. 같은 남자를 좋아한다하고, 아니 그걸 떠나서 방금까지 대전 상대를 이기자 마자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녀석이 어디있냐고. 당황함만으로 가득채워진채, 미안, 이라고 하고 그 자리를 떠버렸다. 그러나 그 후에도, 스가와라는 학교앞을 찾아오는둥, 길거리에서 유난히 자주 마주치는둥, 볼때마다, 「너를 좋아해, 진심으로!」라며 매번 고백을 해왔다. 열번찍어 안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그의 끊임 없는 구애에 마음이 흔들렸던것인지, 12월 중순, 크리스마스를 앞둔 토요일, 그의 변함없는 고백에 자신도 모르게 '그래' 라고 대답한건 충동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후 같이 시간을 보내고, 연약하게 생겨서 매운걸 엄청 좋아한다던가, 영화를 보면 엄청 감성적이라던가, 등 뒤에 있는 점이라던가, 엄마처럼 엄청 챙겨 준다는 점이라던가, 그런 것들 때문에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열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게 된건 역시, 그가 세터로써 배구를 하는 모습이었을까. 어느새 먼저 연락하는 건 오이카와의 몫이 되었고, 이름을 부르는 것도, 먼저 안아주는것도, 애정표현을 하는것도 오이카와의 몫이 되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진거라 하지만, 아무렴 어때, 그런것 따위 상관없었다. 



"토오루야 말로 받아줘서 고마워. 정말로."


 처음에는 조금은 차가웠을 지도 모르는 제 행동들이 가끔 떠올랐다. 오이카와는 그때로 돌아갈수만 있다면 그 때 그 행동들을 막아버리고 싶다. 처음엔 거만하게, 네가 나에게 맞춰야지, 잘해야지, 라는 듯한 포스를 펄펄 풍기고 있었으니까. 돌아가서, 어리고 철없던 시절의 나에게, 네가 평생을 바쳐도 네게는 모자른 사람이니 제발 좀 잘해주라고 전하고 싶었다. 억지로 오이카와에게 모든걸 맞춰주며 간간히 보여주던 그 쓸쓸함 가득한 미소를 두번 다시는 짓지 않도록. 


"코우쨩은 이걸 어떻게 견딘거야? 난 지금도 코우쨩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미칠것 같은데 말야."


 오랜만에 보는 그 쓸쓸한 미소였다. 저 질문을 하자 짓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금세 행복하다는 미소로 바꾸곤, 오이카와에게 시선을 맞췄다.


"토오루가 배구하던 모습을 기억하면서 버텼어. 그 모습이 내게는 제일로 멋있는 토오루의 모습이니까. "


 애초에 처음부터 자신에게 반했던 이유가, 연습시합때 처음으로 보여준 스파이크 서브 때문이라고 말하며 수줍게 볼을 붉히는 스가의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워서, 그저 그를 자신의 품안에 깊숙히 넣었다. 다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앞으로도, 평생동안, 이 모습은 자신의 소유물이었고, 평생 다른이에게 넘겨주지 않을꺼라 다짐하며 고마워, 행복하게 해줄께, 라는 둥 조금은 부끄러운 고백을 하며 오이카와는 스가와라의 이마에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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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살의 여름,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그 동안의 아픔을 견뎌 내고, 가슴이 무뎌지고 나서야, 그 시절, 우리의 철 없는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고향을 쫓기듯 떠나야만 했고, 너는 그곳에 강제로 남아야만 했다. 절대로 변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우리의 사랑조차도, 시간의 흐름에 의해 서로 잊혀지기 시작했고, 결국, 서로에 대한 애정은 사춘기 시절의 추억거리로만 마음 한켠에 자리 잡아버렸다. 

 

 나중이 되서야, 너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는 너는 더 이상 내게 예전과 같은 존재가 아니였다. 네 옆은 물론이고, 내 옆 또한 누군가가 있었다. 어린시절의 간지러움도 수줍게 마주하던 시선도 기억 속의 잔상으로만 남겨졌다. 


 때때로 그날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문득 네가 생각나버려, 추억속에 잠긴다. 혹시라도 그 시절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매일 아침을 같이 마주하는 그런 미래가 오지 않았으려나 상상해본다. 


 그렇게 너를 추억하다가, 비가 그침과 동시에 그리움도 잊어버린다.




​                                                                                                                                                  

예전에 트위터에 조각글고 올렸던거 정리해서 다시올림.

2015.02.19 木 

W.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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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와 토오루 X스가와라 코우시


유리조각


w.카요





「집앞이야. 나와.」


 자그마치 삼 년만의 연락이었다. 그 삼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핸드폰 화면에 비쳐지는 문자내용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마치 어제 헤어지고 오늘 다시 만난 사이인 듯. 핸드폰의 주인은 창문 밖을 쳐다보며, 만나고 싶지 않은 얼굴을 보며 인상을 썼다. 


 오이카와 토오루, 자신이 한때 가장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현재,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주치기도 싫은 가증스러운 사람. 무슨 낯짝으로 여길 찾아온건지 통 모르겠다고, 스가라와라 코우시는 생각했다. 창문밖에서 느껴지던 가을바람이 차다고 느껴서 대충 가디건을 걸치고 문을 열었다. 안나올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듯, 오이카와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코우시."


 저 인간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자, 기분이 나쁘다는듯 얼굴을 찌뿌렸다. 자그마치 삼년, 삼년이라는 세월동안 연락하나 없이 깜깜 무소식으로 살아오던 네가, 무슨 변덕으로 찾아온거냐고 묻자 오이카와는 그저 쓸쓸 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런 표정, 옛날이었다면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저 표정은, 이제 더이상 스가와라에게는 효과도, 반응도 없었다. 


 "보고싶었어."


 살짝 튼 입술에서 거짓된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보고 싶었을리가. 삼년전이라면, 자신도 똑같이 답을 했을것이 분명하다. 그리움을 말하고, 애정을 말하고, 사랑을, 이 입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년전, 갑자기 흔적조차 하나도 안 남긴채 자신 앞에서 사라진 오이카와 토오루가, 자신은 그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인한 슬픔에 잠겨 있는동안, 어느 날 여자연예인과 결혼한다고 모두가 떠들어대던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이 입으로 사랑을 담았을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 무려 일년이나 쓸모없는 감정 소비를 하며, 매일 밤을 울어가며, 믿지도 않는 신에게 제발 그를 돌려달라며 빌었던 기억이 언뜻났다. 입안에선 쓴맛이 나는 기분이었다.


 "여긴 왜 왔어."


 일부러, 차갑게, 목소리를 낮게 깔며 사납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네게 미련따위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그 증오가 잘 느껴진다는 듯이 오이카와는 또다시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팔을 들어 스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스가는 탁, 하고 그의 팔을 사납게 쳐냈다. 감히 어딜 만지려고. 그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오이카와는 멋쩍게 웃었다.


"너를 데릴러 왔어. 같이 가자. 황당 할 수 도 있겠지만, 내가 다 설명할수 있어."


"…뭐? 네가 제정신은 아닌건 알았지만 이렇게 미친놈 일줄은 몰랐다. 들을 필요도 없어, 집 갈래. 대체 얼마나 뻔뻔한거야?"


"사정이! …사정이 있었어."


"사정? 무슨 사정!? 나를 그렇게 버리고, 그 긴 시간동안 절망에 빠트려 놓고, 온갖 상상을 해가며 스스로를 위로해가며 버티다가, 결국 듣는건 네 결혼소식인 그 사정? 난 알 필요 없으니까 저리 비켜. "


 언성이 높아졌다. 코끝이 찡해지는게 느껴졌다. 눈물이 금세라도 흐를것만 같았다. 절대로, 이 인간 앞에서 만큼은 우는모습을, 약한 모습을 보여줘선 안됬다. 사납게 소리지르고 그도 할말은 없는지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뒤를 돌아 다시 집으로 향했다. 잘했어, 잘했어 코우시. 이렇게 해야 네가 더이상 상처받지 않아. 괜찮아 질꺼야. 

 뒤에서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에게 사랑한다며, 무슨일이 있어도 믿어준다는 그 말, 함께 해주겠다는 그 말은 뭔데!"


 아, 불현듯 예전의 사랑하던 시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땐, 그땐 그렇게 말했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떠나지 않겠다는 소리였지, 스가와라 코우시라는 남자는, 형용하기도 힘든 복잡함 고통을 견뎌내기엔 아직은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어차피 끝이 난 관계 였기에,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선, 깨끗하게 잘라내 버려야 했다. 더욱더 모질게, 더욱더 사납게. 떨려오는 몸을 감추기 위해 양손에 힘을 주며 주먹을 지었다. 살며시 고개를 돌려 그를 돌아보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더욱더 모질게.


 "…거짓말이었어. 전부 다. 그저 연인 놀이에 장단 조금 맞춰준것 뿐이야. 그땐 연인 사이었으니까, 그냥 너 좋으라고 그런 말도 한거지. 진심인적 한번도 없어."


 그와 나를 이어주고 있는 실을 끊기 위해 내뱉는 이 말들이, 어째서 자신의 심장을 날카롭게 찌르는 것일까. 가슴이 욱긴욱신 아파왔다. 손바닥에 손잡자국이 날정도로 손에 힘을 더 주었다. 다시한번 그에게 싱긋 웃어주고, 자신은 너따위 없어도 잘 살아가고 억지로라도 끊기 위한 미소를 지으며, 스가와라는 다시 그의 집으로 향했다. 집안에 들어와서 문을 닫을때까지 손에 힘을 빼지 않았다. 철컥, 문이 닫히자 그는 미끄러지듯 현관문에 등을 기대며 쭈그렸다. 가장 먼저 이 고요함을 깬것은 그의 울음 소리였다. 훌쩍훌쩍, 엉엉울지도 못하는 제 자신이 불쌍하기만 했다. 어깨가 들썩였다.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미워해야할게 당연한 오이카와를 보고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왜이리 핼쑥해졌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사실은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그리웠던 사실이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그가 너무 원망스럽고, 자신이 더이상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은 괜찮아 질꺼라 생각했다. 아려오는 가슴은 그저 착각일뿐이라고, 곧 괜찮아 질꺼라 자신 스스로를 토닥였다. 스가와라 코우시의 집은 괴로움가득한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오이카와 토오루X스가와라 코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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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지루한 일상의반복속에서 메말라가던 내게, 너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갑자기 나타났어. 내 인생에 순식간에 파고들어, 내게 대처할 기회조차 안주더라. 

너를 처음 마주한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날, 나는 천사를 보았어 분명.


서울에서 전학왔다며 수줍게 교탁 앞에 서서 인사하는 네 모습 뒤에, 꽃잎이 흩날리는걸 보았어. 살짝 홍조를 띄운채 네 이름을 말하고 너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비어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어. 만화나 소설속에선 보통 주인공이 될 사람의 옆자리에 앉던데, 이떄부터 난 알아 차렸어야 하나봐. 내가 네 인생에 있어서 주인공이 될 일은 죽어도 없다는걸. 내 자리에서 가장 먼 맨 마지막 구석에 앉았지 너는. 내가 앞에 앉은 탓에 마음대로 네 뒷모습도 구경 못하고, 그렇다고 내 성격에 먼저 쉬는시간에 다가가 말을 나눌 수가 없었어. 


 그렇게 네가 전학오고도 분명 몇주는 흘렀을꺼야, 여전히 너와 한마디조차 못했었거든. 항상 틈만 나면 너를 쳐다보고 있었는데도, 너도 참 무심하지, 그걸 눈치 못채고. 체육시간때, 네가 혼자 배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 처음으로, 그때가 말로 처음으로 말을 건넸던거 같아. 


왜 혼자 있어?


그 물음에 너는 다들 축구한다고 나가버렸다고 대답했어. 배구는 의외로 비인기 종목이라 다들하기 싫어한다고. 그런 네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워 보였어. 혼자만 특이하게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홀로 외톨이 신세라는건 어떤 기분인지 내가 제일 잘 알았으니까. 무슨 용기가 났던 건지는 몰라도, 그때 네게 배구를 가르쳐 달라고 한건,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일 일지도 몰라. 그게 너와 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었거든.

 그 날 오후, 도서관에서 배구에 관한 책을 찾느라 꽤나 애 먹었던거 같아.


 이후 우리의 관계가 눈에 띄게 달라진건 아니였어. 나는 여전히 소심했고, 너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 유일하게 둘만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방과후 체육관에서 이려나. 누가 먼저 말을 꺼낸것도 아닌데, 그 시간만 되면, 너와 나는 자연스럽게 그 곳에서 모였어. 둘이서 배구를 했었지. 한동안은 일방적으로 너에게 가르침을 받는것 뿐이었지만. 가끔 같이 하교를 하고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다거나 그런 일이 있을때면 나는 너무 기뻐서 죽을것만 같았어. 너는 내게 첫사랑이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생긴 친구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날인가 부터 너는 이 곳에 오는 횟수가 줄기 시작했어. 그래도 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매일 이곳에 나왔어. 혹시나 너를 볼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그렇게 이주를 흘려 보냈을까, 내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마침내 네가 왔어.

  얼굴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어. 적어도 얼굴을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많다고 생각했지. 막상 이렇게 보니까, 입을 못 열겠더라. 겨우겨우 입술을 떼고 한 말이 잘지냈어, 그뿐이었어. 너는 여전히 그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응, 이라며 나에게 웃어줬어. 


 많이 바쁜거야?


  너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저었어. 바쁘다기 보단, 음, 애인이 생겼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더라. 


그래서 그런데 앞으로 너 배구 가르쳐 주기 힘들거 같아. 미안.


 내가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자기딴에 애인이랑 데이트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그래서 그렇다고 했었다. 나는 너랑 배구하는 이 시간에 제일 중요했는데. 눈물이고 뭐고 그런건 없었어. 다만 고백하기도 전에 차인 기분이라 공허함은 감출 수 가 없더라. 그렇게 너와 나를 유일하게 이어주던 연결고리가 무자비하게 끊겨버렸어. 다시 나는 너를 지켜보기만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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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QUEST

백 단X휴


W.카요



 "어서오세요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딸랑, 소리와 함께 한 여자가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온다. 카운터 앞에서 서서 녹차 프라페치노 하나요, 라며 지갑을 꺼내든다. 카운터 안쪽에 서있던, 이 곳의 직원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네, 녹차 프라페치노하나 주문받았습니다, 라며 미소를 건넨다. 그 미소를  본 여자의 얼굴에는 살짝 홍조가 생기고 만다. 


 이 모습만 벌써 몇번째 반복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저 얼굴이 뭐라고 저렇게 좋다고 난리인 걸까. 아무리 봐도 난 잘생긴거 모르겠던데. 아침에 보나, 낮에 보나, 밤에 보나. 그래. 밤일할때는 조금 잘생겼을지도. 그치만 그건 불가항력이라고. 쟤가 나쁜거야.


 카운터 근처의 혼자 앉을 수 있는 자리에 흑발의 남자는 혼자 궁시렁 거리며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은 카운터 직원이 보기라도 한걸까, 직원은 손님이 없는 틈을 타 흑발의 남자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는다.


 "왕자, 괜찮아? 안심심해?"


남자를 왕자라 부르는 직원이 오자, 왕자는 황급히 찌푸리고 있던 인상을 풀며, 어 괜찮아, 라며 무심한 표정을 짓는다.


"심심해 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네."


"…단아, 꼭 너가 카운터 맡아야해? 알바생은?"


"말했잔아, 오늘만 이라고. "


  조금은 뚱한 듯 입술을 살짝 삐죽거리곤, 이내 다시 입술을 집어 넣는다. 왕자는 아무래도 이런 투정이 쓸모없다고 느껴진것인걸까, 아니면 자신이 연상이기에 이해해줘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비롯된걸까. 무엇이던 간에, 그것은 왕자를 매우 언짢게 하였다. 곧 있으면 점심시간 이니까 조금만 기다리라며, 단은 다시 카운터 뒤로, 커피도 자기 혼자 만들고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게 뭐야. 책이라도 가져올껄. 계속 저렇게 다른 사람들한테 실실 웃어주는 모습 보기는 싫어. 아, 뭔가가 안에서 북받쳐 오르는 기분이다. 


 표정관리가 더 이상 힘들어서, 그는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주문을 받던 중이던 단은 당황과 걱정가득한 표정으로 왕자, 휴를 쳐다보았다. 생각없이 일단, 문을 열고 가게를 무작정 나오긴 했으나, 여기는본인의 세계가 아니였고, 이 근처는 단의 가게라는 것 밖에 모르기에, 휴는 일단 건물 뒷편에서 이어지는 골목길로 들어가 쭈구려 앉았다. 무슨 꼴이야 대체 이게. 한 나라의 왕자가, 단지 저 남자 때문에, 이러고 있다는 사실이 자기 자신을 매우 비참하게 만들었다. 자기가 책임지겠다고 할땐 언제고, 나 무슨 남편만 믿고 시집왔는데, 나쁜놈이 바람난거 같잖아. 그렇게 쭈그려서 혼자 훌쩍이기를 십분정도 지났을까, 땅바닥 밖에 안보이던 왕자의 시야에 누군가의 발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단의 발, 이겠지만. 훌쩍인 탓인지 조금은 빨개진 눈가와 코가 우스꽝스러워보였다. 


"…단?"


"여기서 혼자 쭈그리고 앉아서 뭐하는거야. 일어나, 바닥 추워."


일이 아직 한참 바쁠테도 불구하고 단은 나를 찾으러 와주었다는것을 나는 안다. 그리기에 고마워 해야 하지만, 그날따라 무슨 심술이 났었던 건지, 머리와는 다르게 마음은 자기 멋대로 말하고 있었다.


"단이 무슨 상관이야. 냅두고 가서 단이 좋아하는 카페 일이나 해. "


"허, 우리 왕자님 무슨일인걸까."


단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남이라면 기분이 좋았었겠지만, 나는 일단 단 보다 연상이고, 어른인데, 애취급받는거 같아서…아, 그렇다고 쓰다듬 받는 느낌이 싫은 건 아니지만.  여전히 뚱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한다.


"바쁘신 카페 사장님이 저에게 주실 시간이 감히 어디있겠습니까, 어서 가시져."


마지막 단어는 일부러 더욱더 비꼬듯 힘을 주어 말했다. 그러더니, 단이 갑자기 피식하고 웃더니, 웃음을 참지 못해 결국 혼자 소리내어 웃는다. 다 웃었는지 나의 눈높이에 맞게 허리를 구부리고는, 눈을 맞춘다. 그리고는 하는말이, 안놀아줘서 삐진거야? 란다. 


"누가 안놀아줘서 삐졌대?, 자꾸 웃음으로 이사람 저사람 다 홀리고 다니니ㄲ…" 


순간 아차 싶었다. 그말을 듣고 발끈 했던 것인지 순간 나도 모르게 본심이 튀어나왔다. 이제 쪽팔려 죽는 일 밖에 안남은건가. 나가 죽자. 휴야.


"질투한거야?"


얼굴이 새빨개진 나를 보며 묻는다. 입꼬리가 실룩거리는게 보인다. 넌 지금 이 상황이 즐겁니. 나는 죽을 거 같단다. 


"귀엽네, 왕자." 


라며 갑자기 날 확 끌어 안는다. 뭐하는거야, 아둥바둥거리며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를 이겨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귀여워서그래, 라며 볼과 이마, 머리, 그 외에도 보이는 여러가지에 쪽쪽 소리를 내며 뽀뽀를 해댄다. 그만해, 사람들이 볼꺼야. 괜찮아, 보라고 하는거야. 


남들에게 보이기 싫다며 발악을 하자 단이 날 벽에 기대게 하고 자신의 두팔로 날 가둔다. 


"이러면 안보이지 이제?"


 지금 왕자 얼굴 홍당무 같다. 더 빨갛게 만들어줄까? 갑자기 주둥아리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그의 팔 안에 갇혀 아무것도 못하고 입술이 점점 다가오는것만 보고 있던중, 입술과 입술이 닿기 직전의 가장 아슬아슬한 시점에서, 그가 갑자기 입을 연다. 


"이건 오직 너만의 것이니까, 그러지 않아도 돼."


그러고선 지 멋대로 입술을 맞춘다. 여기서 더 빨개 질 수 있을까 싶었지만, 내 얼굴은 그 순간 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빨갛게 되었다. 처음엔 가만히 맞추다가 조금씩, 조금씩 먹어 치울듯이 나의 입술을 단은 탐해갔다. 입술에서 만족을 못한건지, 입술에서 점점 내려와 턱선, 목, 어깨, 그리고 쇄골까지 늑대가 자기 영역을 표시하듯  단 또한 자국을 남김으로써 나에 대한 자기영역 표시를 남기기 시작했다. 조금씩 숨이 거칠어 지는게 느껴졌다. 둘 다. 자신의 입에서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는지도 모르고 왕자와 백 단, 둘아 이 행위에 열중하고 있었다. 


하아…읏, 간지러워…


언뜻 언뜻 들리던 왕자의 신음소리가 트리거 역할을 했던 것인걸까, 열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던 도중, 단이 살며시 입을 뗀다. 그리고는 하는 말이,


"집에가자. 여기서 마저 할순 없잔아."


"으응…?카페는…?"


살짝 풀린 눈으로 왕자는 단을 쳐다본다. 왕자의 얼굴에는 이미 오래전의 삐짐과 투정은 풀리고 남아있는것은 욕정뿐이였다. 욕정과 애정. 정확히  말하면. 단은 본인이 전생에 뭘 했는지는 몰라도, 정말로 나라 혹은 그 이상을 구했었을 꺼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사랑스러운 애인을 내려줄수 있을까. 속으로 백번이고 하느님 부처님 알라신 그외 모든 신에게 감사하다고 생각하며 그는 말 한마디와 함께 왕자와 유유히 골목을 빠져나와 단의 집으로 향했다.


"입시휴업 내지, 뭐. "



                                                                                                                                                                              


2015.01.01 새해 첫글.

 아 힘들다 옛다 가져라. 캐붕냈다면 미안 난 노력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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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만진다.

추위 때문에 빨갛게 상기된 볼에서 부터, 건조함에도 불구하고 촉촉해보이는 생기있는 입술을 지나, 조금은 왜소해 보이는 목선을 따라 아찔하게 유혹하는듯한 네 쇄골까지, 이 손으로 직접 만져 몸에 너를 새기고, 너를 내 기억속에 새긴다. 너는 간지럽다 키득거리며 웃어도, 나는 정성을 다해 너를 새긴다.
네가 사라지기 전에, 내 몸에, 기억에, 너를 새기려 매일을 애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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