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뭄


홀든가 이야기


W.카요





 형이 죽었다. 굳이 어느쪽이라고 묻는다면, 평생을 불로불생할것만 같았던 큰형이 죽었다. 모두의 예상대로 전장에서 열렬히 싸우다 죽은것도 아니다. 갑자기, 어느날, 믿기지 않을정도로 조용히 죽었다. 아침이라고 하기엔 너무 늦어버린 시간에 일어나 거실을 나갔는데도, 큰형이 없자 웬일인가 싶어 깨우러 큰형방에 들어갔었다. 아직도 자는거야? 장난치는 목소리로 방문을 열자, 고요했다. 마치 시간조차 얼어붙은 것처럼, 세상에 큰형말고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것 처럼, 이상한기분이들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조용히 침대위에 누워 잠들어있는 큰형의 모습에, 나는 이질감을 느꼈다.   


"형...?"


불러도 대답하지않는다. 소리가 돌아오지 않는다. 무슨일이있어도 꿋꿋한 목소리로, 왜그러느냐 이글, 하던 소리가 더이상 들려오지않는다. 고요한 방속에서 나는 타인의 시선을 느꼈다. 아니, 내가 타인이 되어 그 고요함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저 가만히 서있었을 뿐이다. 마치 남의 일인양,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회사에 연락을했다. 드렉슬러가 알겠다고 곧 온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가 묘하게 떨리고 있었다.


가만히 침대 끝자락에 걸터 앉았다. 혹시라도 형이 깨지않도록. 가만히 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고요함만이 이곳에서 유일한 존재였다.


작은형이 다급하게 큰형의 이름을 부르며 집안으로 들어온것은 이미 사람들로 집안가득 북적이고 있던 중이였다. 평생볼까말까하는 당황하는 표정이었다. 눈시울에 조금 붉어져 있는게 눈에 보였다. 나의 눈가는 여전히 건조했다. 


장례식을 치루게됬다. 첫째날은 가문사람들이 찾아왔다. 가문과 연관된, 그쪽 부류의 사람들. 진심으로 애도 하는이들도 있었지만, 가식적으로 눈물을 보이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하나같이 똑같은 표정을 하루종일 쳐다보고있자니 따분했다.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있는것도 지겨웠다. 나의 얼굴은 건조하다 못해 말라 비틀어질 정도였다. 


둘째날은 회사사람들, 재단사람들, 연합사람들, 그 외에 모든 인연이있었던 사이퍼들이 찾아왔다. 그것이 적으로써 만났던가에 개의치 않고, 그들은 진심으로 애도해주었다. 눈물을 흘린 이들도 꽤나 있었다. 부르스 영감이 나에게 다가와 등을 토닥여주었다. 친하지 않던사이에 주고받는 위로란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마틴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이해가 가지않는다는듯 "어째선가요?" 라는 말만 남기고 자리를 바삐 떴다. 마를렌과 샬렷녀셕이 큰형의 사진앞에 주저앉아 오열했다. 복도끝까지 그들의 울움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이 전부 둘의 눈물만으로도 차버리지 않을까 라는 쓸데없는 고민도 했다. 저 모습을 보고있자니, 이제는 얼굴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타버리는기분이었다. 아무것도 느낄수가 없었다. 공허했다. 텅빈 우주속에 나 혼자만이 남은듯 공허했다. 


마지막날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작은 형이 큰형사진 앞에서서 중얼거리는 모습을 봤다. 하얗고 작던 얼굴이 동백꽃처럼 붉게 피어올랐다. 장례식을 도와주던 사람들중 누군가가 나보고 이제 인사할차례라며 등을 떠밀었다. 나는 그 사진 앞에 서서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가만히 그저 사진속 큰형의 무덤덤한 표정을 쳐다볼뿐이었다. 의미없는 '인사'를 끝내고 난후 장례식을 끝맺혔다. 애초에 형이 흔적을 남기는 성격이 아니라 유품은 옷과 검뿐이었다. 옷은 절차에 따라 시신과함께 같이 태워버렸다. 내 손에 남은 건 검뿐이었다. 큰형은 처음 이 검을 받은 후로 부터 계속 이 검 하나만을 사용해 왔다. 거의 평생을 형의 반려자로써 곁에 있어왔다 해도 틀린것이없다.  그 검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질적 대련상대를 해주오던 형의 기억이 떠올랐다.


'검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것이 아니다 이글. 심신을 가다듬고, 눈앞의 형체뿐만이 아니라, 그 속의 내면까지 벤다는일념으로 베는것이다.'


그때는 이해가 가지 않던 큰형의 말들이 조금씩 세월이 지나면서 몸으로 직접 느끼게 되었다.


'자세부터 다시 똑바로해라 이글.'


'홀든가로 태어난 이상, 너에겐 선택권이없다 이글.'


'백번더, 다시 휘둘러라!'


'아픔도 상처도 모두 전쟁터에 나가는 검사들에겐 그저 자랑스러운 영관의 표시 일뿐이다 이글. 그 흉터를 자랑스럽게 여기거라. 네 흉터를 , 나의 흉터를.'


'미안하구나 이글. 너에게 만은 같은 상처, 입히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는데. 홀든가가 아니라, 네 형으로써 미안하구나, 나의 동생.'


'...잘했다, 이글.'



갑자기 쏟아져 오는 옛 기억 때문에 텅 비어있던 공간이 가득 차오르는 기분이었다. 목이 탁, 하고 막혀왔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눈가에서 촉촉한게 느껴졌다. 나는 지금 눈믈 흘리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사람인냥 엉엉 무릎을 꿇은채 검을 품안에 안고 울고 있었다. 아, 그렇구나. 형은 정말로 죽은거구나. 이제 더 이상 검을 휘두르는 자세가 틀리다며 지적하며 혼내줄 사람도, 나를 위해 진심의 눈물을 흘려줄 이도, 애정어린 눈으로 잘했다며 칭찬해주며 머리를 줄 누군가는 더 이상 존재하지않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따듯하게만 느껴지던 봄바람이 유달리 쌀쌀하게만 느껴졌다. 나에게 봄은 오지 않고, 겨울만이 다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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