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살의 여름,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 


 그 동안의 아픔을 견뎌 내고, 가슴이 무뎌지고 나서야, 그 시절, 우리의 철 없는 행동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고향을 쫓기듯 떠나야만 했고, 너는 그곳에 강제로 남아야만 했다. 절대로 변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우리의 사랑조차도, 시간의 흐름에 의해 서로 잊혀지기 시작했고, 결국, 서로에 대한 애정은 사춘기 시절의 추억거리로만 마음 한켠에 자리 잡아버렸다. 

 

 나중이 되서야, 너를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는 너는 더 이상 내게 예전과 같은 존재가 아니였다. 네 옆은 물론이고, 내 옆 또한 누군가가 있었다. 어린시절의 간지러움도 수줍게 마주하던 시선도 기억 속의 잔상으로만 남겨졌다. 


 때때로 그날처럼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문득 네가 생각나버려, 추억속에 잠긴다. 혹시라도 그 시절 우리가 조금만 더 일찍 철이 들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미래를, 매일 아침을 같이 마주하는 그런 미래가 오지 않았으려나 상상해본다. 


 그렇게 너를 추억하다가, 비가 그침과 동시에 그리움도 잊어버린다.




​                                                                                                                                                  

예전에 트위터에 조각글고 올렸던거 정리해서 다시올림.

2015.02.19 木 

W.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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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와 토오루 X스가와라 코우시


유리조각


w.카요





「집앞이야. 나와.」


 자그마치 삼 년만의 연락이었다. 그 삼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느껴질 정도로 핸드폰 화면에 비쳐지는 문자내용은 너무나도 단순했다. 마치 어제 헤어지고 오늘 다시 만난 사이인 듯. 핸드폰의 주인은 창문 밖을 쳐다보며, 만나고 싶지 않은 얼굴을 보며 인상을 썼다. 


 오이카와 토오루, 자신이 한때 가장 사랑했던 사람, 그리고 현재,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주치기도 싫은 가증스러운 사람. 무슨 낯짝으로 여길 찾아온건지 통 모르겠다고, 스가라와라 코우시는 생각했다. 창문밖에서 느껴지던 가을바람이 차다고 느껴서 대충 가디건을 걸치고 문을 열었다. 안나올줄 알았는데 의외라는 듯, 오이카와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코우시."


 저 인간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려지자, 기분이 나쁘다는듯 얼굴을 찌뿌렸다. 자그마치 삼년, 삼년이라는 세월동안 연락하나 없이 깜깜 무소식으로 살아오던 네가, 무슨 변덕으로 찾아온거냐고 묻자 오이카와는 그저 쓸쓸 하게 미소를 지었다. 저런 표정, 옛날이었다면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저 표정은, 이제 더이상 스가와라에게는 효과도, 반응도 없었다. 


 "보고싶었어."


 살짝 튼 입술에서 거짓된 단어들이 흘러나왔다. 보고 싶었을리가. 삼년전이라면, 자신도 똑같이 답을 했을것이 분명하다. 그리움을 말하고, 애정을 말하고, 사랑을, 이 입으로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년전, 갑자기 흔적조차 하나도 안 남긴채 자신 앞에서 사라진 오이카와 토오루가, 자신은 그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인한 슬픔에 잠겨 있는동안, 어느 날 여자연예인과 결혼한다고 모두가 떠들어대던 그 소식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자신은 이 입으로 사랑을 담았을 것이다. 그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 무려 일년이나 쓸모없는 감정 소비를 하며, 매일 밤을 울어가며, 믿지도 않는 신에게 제발 그를 돌려달라며 빌었던 기억이 언뜻났다. 입안에선 쓴맛이 나는 기분이었다.


 "여긴 왜 왔어."


 일부러, 차갑게, 목소리를 낮게 깔며 사납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네게 미련따위없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듯이. 그 증오가 잘 느껴진다는 듯이 오이카와는 또다시 쓸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의 팔을 들어 스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스가는 탁, 하고 그의 팔을 사납게 쳐냈다. 감히 어딜 만지려고. 그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오이카와는 멋쩍게 웃었다.


"너를 데릴러 왔어. 같이 가자. 황당 할 수 도 있겠지만, 내가 다 설명할수 있어."


"…뭐? 네가 제정신은 아닌건 알았지만 이렇게 미친놈 일줄은 몰랐다. 들을 필요도 없어, 집 갈래. 대체 얼마나 뻔뻔한거야?"


"사정이! …사정이 있었어."


"사정? 무슨 사정!? 나를 그렇게 버리고, 그 긴 시간동안 절망에 빠트려 놓고, 온갖 상상을 해가며 스스로를 위로해가며 버티다가, 결국 듣는건 네 결혼소식인 그 사정? 난 알 필요 없으니까 저리 비켜. "


 언성이 높아졌다. 코끝이 찡해지는게 느껴졌다. 눈물이 금세라도 흐를것만 같았다. 절대로, 이 인간 앞에서 만큼은 우는모습을, 약한 모습을 보여줘선 안됬다. 사납게 소리지르고 그도 할말은 없는지 다시금 입을 다물었다. 뒤를 돌아 다시 집으로 향했다. 잘했어, 잘했어 코우시. 이렇게 해야 네가 더이상 상처받지 않아. 괜찮아 질꺼야. 

 뒤에서 소리치는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에게 사랑한다며, 무슨일이 있어도 믿어준다는 그 말, 함께 해주겠다는 그 말은 뭔데!"


 아, 불현듯 예전의 사랑하던 시절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땐, 그땐 그렇게 말했었다. 어디까지나 자신이 떠나지 않겠다는 소리였지, 스가와라 코우시라는 남자는, 형용하기도 힘든 복잡함 고통을 견뎌내기엔 아직은 단단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어차피 끝이 난 관계 였기에,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선, 깨끗하게 잘라내 버려야 했다. 더욱더 모질게, 더욱더 사납게. 떨려오는 몸을 감추기 위해 양손에 힘을 주며 주먹을 지었다. 살며시 고개를 돌려 그를 돌아보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더욱더 모질게.


 "…거짓말이었어. 전부 다. 그저 연인 놀이에 장단 조금 맞춰준것 뿐이야. 그땐 연인 사이었으니까, 그냥 너 좋으라고 그런 말도 한거지. 진심인적 한번도 없어."


 그와 나를 이어주고 있는 실을 끊기 위해 내뱉는 이 말들이, 어째서 자신의 심장을 날카롭게 찌르는 것일까. 가슴이 욱긴욱신 아파왔다. 손바닥에 손잡자국이 날정도로 손에 힘을 더 주었다. 다시한번 그에게 싱긋 웃어주고, 자신은 너따위 없어도 잘 살아가고 억지로라도 끊기 위한 미소를 지으며, 스가와라는 다시 그의 집으로 향했다. 집안에 들어와서 문을 닫을때까지 손에 힘을 빼지 않았다. 철컥, 문이 닫히자 그는 미끄러지듯 현관문에 등을 기대며 쭈그렸다. 가장 먼저 이 고요함을 깬것은 그의 울음 소리였다. 훌쩍훌쩍, 엉엉울지도 못하는 제 자신이 불쌍하기만 했다. 어깨가 들썩였다.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미워해야할게 당연한 오이카와를 보고서도, 마음 한켠으로는 왜이리 핼쑥해졌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사실은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그리웠던 사실이 자리잡았다. 그럼에도, 그가 너무 원망스럽고, 자신이 더이상 상처받는 것이 싫어서,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 이렇게 하면 자신은 괜찮아 질꺼라 생각했다. 아려오는 가슴은 그저 착각일뿐이라고, 곧 괜찮아 질꺼라 자신 스스로를 토닥였다. 스가와라 코우시의 집은 괴로움가득한 울음소리로 가득찼다.











오이카와 토오루X스가와라 코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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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지루한 일상의반복속에서 메말라가던 내게, 너는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갑자기 나타났어. 내 인생에 순식간에 파고들어, 내게 대처할 기회조차 안주더라. 

너를 처음 마주한날로 거슬러 올라가서, 그날, 나는 천사를 보았어 분명.


서울에서 전학왔다며 수줍게 교탁 앞에 서서 인사하는 네 모습 뒤에, 꽃잎이 흩날리는걸 보았어. 살짝 홍조를 띄운채 네 이름을 말하고 너는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 비어있는 자리로 가서 앉았어. 만화나 소설속에선 보통 주인공이 될 사람의 옆자리에 앉던데, 이떄부터 난 알아 차렸어야 하나봐. 내가 네 인생에 있어서 주인공이 될 일은 죽어도 없다는걸. 내 자리에서 가장 먼 맨 마지막 구석에 앉았지 너는. 내가 앞에 앉은 탓에 마음대로 네 뒷모습도 구경 못하고, 그렇다고 내 성격에 먼저 쉬는시간에 다가가 말을 나눌 수가 없었어. 


 그렇게 네가 전학오고도 분명 몇주는 흘렀을꺼야, 여전히 너와 한마디조차 못했었거든. 항상 틈만 나면 너를 쳐다보고 있었는데도, 너도 참 무심하지, 그걸 눈치 못채고. 체육시간때, 네가 혼자 배구를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어. 처음으로, 그때가 말로 처음으로 말을 건넸던거 같아. 


왜 혼자 있어?


그 물음에 너는 다들 축구한다고 나가버렸다고 대답했어. 배구는 의외로 비인기 종목이라 다들하기 싫어한다고. 그런 네 모습이 조금은 안쓰러워 보였어. 혼자만 특이하게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 홀로 외톨이 신세라는건 어떤 기분인지 내가 제일 잘 알았으니까. 무슨 용기가 났던 건지는 몰라도, 그때 네게 배구를 가르쳐 달라고 한건, 내 인생에서 최고로 잘한 일 일지도 몰라. 그게 너와 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해주었거든.

 그 날 오후, 도서관에서 배구에 관한 책을 찾느라 꽤나 애 먹었던거 같아.


 이후 우리의 관계가 눈에 띄게 달라진건 아니였어. 나는 여전히 소심했고, 너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어. 유일하게 둘만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은 방과후 체육관에서 이려나. 누가 먼저 말을 꺼낸것도 아닌데, 그 시간만 되면, 너와 나는 자연스럽게 그 곳에서 모였어. 둘이서 배구를 했었지. 한동안은 일방적으로 너에게 가르침을 받는것 뿐이었지만. 가끔 같이 하교를 하고 중간에 아이스크림을 사먹는다거나 그런 일이 있을때면 나는 너무 기뻐서 죽을것만 같았어. 너는 내게 첫사랑이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생긴 친구이기도 했으니까.


 그러던 어느날인가 부터 너는 이 곳에 오는 횟수가 줄기 시작했어. 그래도 나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매일 이곳에 나왔어. 혹시나 너를 볼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그렇게 이주를 흘려 보냈을까, 내 노력에 보답이라도 하는 듯, 마침내 네가 왔어.

  얼굴을 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어. 적어도 얼굴을 직접 마주하기 전까지만 해도, 많다고 생각했지. 막상 이렇게 보니까, 입을 못 열겠더라. 겨우겨우 입술을 떼고 한 말이 잘지냈어, 그뿐이었어. 너는 여전히 그 특유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응, 이라며 나에게 웃어줬어. 


 많이 바쁜거야?


  너는 그저 말없이 고개를 저었어. 바쁘다기 보단, 음, 애인이 생겼어.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더라. 


그래서 그런데 앞으로 너 배구 가르쳐 주기 힘들거 같아. 미안.


 내가 욕심이 너무 과했던 걸까. 자기딴에 애인이랑 데이트하는게 더 중요하다고 그래서 그렇다고 했었다. 나는 너랑 배구하는 이 시간에 제일 중요했는데. 눈물이고 뭐고 그런건 없었어. 다만 고백하기도 전에 차인 기분이라 공허함은 감출 수 가 없더라. 그렇게 너와 나를 유일하게 이어주던 연결고리가 무자비하게 끊겨버렸어. 다시 나는 너를 지켜보기만 하던 그 시절로 돌아가야만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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